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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아이가 울지 않는 나라… '하류노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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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12 10:20:00 수정 : 2016-07-11 23: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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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 노인’ 갈수록 급증… 일본 노후 사회안전망 흔들 / 정부 재원 부족 탓 연금확충 난항 외국계 고급 호텔에서 일했던 도쿄 아다치구 거주 남성 A(72)씨는 정년퇴직 전 연간 수입이 약 700만엔(약 8060만원)이었다. 노후는 적어도 ‘중류층’ 생활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현재 받는 후생연금은 매월 5만5000엔에 불과하다. 그는 “평범하게 일해온 내가 저연금 수급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원인은 30여년을 외국에서 살아 일본에서 근무한 기간이 8년뿐이었기 때문. 그는 스웨덴서 수급자격을 얻어 연금으로 월 1만엔을 받는다. 인공투석이 필요한 아내(78)의 장해후생연금 등은 월 11만5000엔 나온다. 이 돈으로는 아내의 돌봄 서비스 이용료와 환자용 별도 식재료비, 집세, 의료비 등을 내고 나면 가계는 적자가 나곤 한다. 2000만엔 정도 받았던 퇴직금은 이제 500만엔밖에 남지 않았다.

도쿄 다마시의 도영 임대 단지에 사는 B(81)씨는 후생연금과 국민연금으로 월 11만엔을 받는다. 하지만 치매를 앓는 아내(85)와 함께 생활하기에는 부족한 금액이다. 아내는 주 2회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증상이 나빠지면 서비스를 늘릴 수밖에 없다. 같은 시의 도영 주택에 사는 C(83·여)씨는 5년쯤 전 집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약 40년간 살던 곳에서 이사했다. 집세는 싸졌지만 남편은 4년 전 숨졌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산다”며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화제의 ‘하류 노인’이 바로 내 이야기인 것 같다”며 걱정했다.

이 사례들은 최근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에 소개됐던 내용이다. 일본의 저연금 수급자들의 문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의 노후 사회안전망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자 등이 대상인 국민연금은 지급액이 적고, 회사원이 ‘현역’으로 일할 때 수입에 따라 적립한 돈을 바탕으로 지급액이 결정되는 후생연금도 저연금에 대한 불안이 널리 퍼져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4년도 말 기준 후생연금이 월 5만엔 미만인 사람이 약 42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약 5만3000명이었던 10년 전과 비교해 8배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국민연금 수급액이 월 5만엔 미만인 사람은 2014년도 말 기준 약 955만명이었다. 저출산 고령화로 향후 공적연금 지급액도 줄어들 것이 확실시된다.

일본 정부는 포괄적 저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내년 4월부터 1인당 월 5000엔을 지급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연간 약 5600억엔의 안정적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소비세 증세로 늘어난 세수를 재원으로 삼으려던 계획이 소비세율 인상(8→10%) 연기(2017년 4월→2019년 10월)로 물거품이 됐다.

이와 더불어 소비세율 인상과 동시에 실시될 예정이었던 공적연금 수급 자격기간을 25년에서 10년으로 단축(약 300억엔), 저소득자의 개호(간병)보험료 경감(약 1200억엔) 등 사회보장 확충 대책의 추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헌 일정 등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증세 연기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세율을 인상할 때와 똑같은 일을 모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우선책으로 보육 환경 정비와 ‘개호 이직 제로’를 위한 개호 환경 정비 등 현역 세대를 위한 시책을 예로 들었다. 그는 또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아베정권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결실을 활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원을 확보해 나갈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엔화 강세와 주가 하락으로 일본 경제가 썩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재원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공적연금의 세대 간 갈등 문제도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일수록 불리한 구조로 돼 있어 젊은 층이 ‘세대 간 격차’에 불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불안정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면서 보험료를 내는 게 힘든 젊은 층도 적지 않아 그들이 불공평함을 호소한다면 세대 간 지지를 기본으로 하는 제도의 유지마저 위협받게 된다.

후생노동성이 지난해 공표한 추산치를 보면 후생연금에 가입하는 ‘샐러리맨’과 ‘전업주부’ 부부 세대의 경우 현재 70세 부부는 현역 시절 1000만엔을 납부하고, 총액 5200만엔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수급액이 납부액의 5.2배에 달한다. 이에 비해 현재 50세 세대는 1900만엔을 납부하고 2.8배인 5300만엔의 연급을 받고, 현재 20세 세대는 3400만엔을 납부하고 2.3배인 7900만엔의 연금을 각각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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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기초연금)에 가입하는 자영업자의 경우, 현재 70세인 사람은 납부한 보험료의 3.8배를 수급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현재 40세 이하 세대는 그 배율이 1.5배로 떨어진다.

일본의 사회보장 예산도 고령자에 쏠려 있다. 2013년의 경우 약 110조엔 가운데 연금과 75세 이상 고령자의 의료비, 개호서비스 등 주로 고령자를 위한 곳에 약 76조엔이 쓰였다. 전체의 약 70%에 달한다. 이에 비해 주로 젊은 세대를 위한 자녀 양육과 관련해서는 5%에 그쳤다.

◆ 보육소 태부족… 대기아동 2015년 2만명 넘어

일본은 보육 시설의 수용 용량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보육소에 입소 신청을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전국의 대기아동은 지난해 4월 기준 2만3617명이었다. 전년 대비 약 1800명 늘어난 것으로 5년 만의 증가였다. 이와 함께 육아 휴가 중이거나 국가 기준을 만족하는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등 잠재적 대기아동도 약 6만명으로 추산됐다.

일본 정부는 보육 시설 확충을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어린이·양육 지원 신제도’를 도입했다. 몇 명 안 되는 어린이도 맡을 수 있는 ‘소규모 보육’을 새롭게 제도화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 내년도까지 새롭게 50만명 분의 보육 시설을 늘리기로 했다. 이를 통해 내년도 말까지 대기아동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보육시설 확충은 보육사 확보와 함께 추진돼야 한다. 50만명 분의 수용 규모를 확보하려면 새롭게 보육사 9만명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보육사의 평균 급여는 월 22만엔으로 전체 산업 평균보다 11만엔 낮다. 좀처럼 채용이 어렵다. 현장에서는 “시설 수만 늘릴 게 아니라 보육의 질도 향상하지 않으면 보호자의 불안 해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보육 시설 부족 문제는 저출산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 내각부가 “아이를 더 갖고 싶다”는 20∼49세 남녀에게 실제로 아이를 낳고 싶은지 조사했을 때 “더 낳지 않겠다 또는 더 낳을 수 없다”는 응답이 약 45%에 달했다. 일본의 합계특수출생률(여성 1인이 평생 낳는 아이 수 평균)은 2015년 기준 1.46으로 2년 만에 상승했다. 그러나 정부가 목표하는 1.8과는 아직 격차가 크다. 이대로라면 50년 후에 인구 1억명을 유지하겠다는 목표는 이루기 어렵다.

‘자녀 양육은 엄마에게 맡긴다’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4년 민간 기업의 남성이 육아휴가를 쓴 비율은 2.3%에 불과해 여성(86.6%)과 차이가 컸다.

도쿄=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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