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뿔에 받힌 남편이 공중으로 튀어 올라 바닥으로 내려꽂힐 때 그의 아내는 관중석에서 경기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악했다. 소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남편의 가슴을 들이받았다. 병원으로 옮겨진 남편은 결국 숨졌다. 지난 9일(현지시간) 스페인 동부 테루엘에서 펼쳐진 투우 경기에서 소뿔에 가슴을 받혀 사망한 투우사 빅토르 바리오(29)의 아내 하퀴엘 산츠(32) 이야기다.
2014년에 바리오와 결혼한 산츠는 남편 죽음에 말을 잃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진 바리오는 폐와 대동맥, 심장 등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 의료진이 힘써봤지만 그를 살릴 방법은 없었다.
10일 외신들에 따르면 바리오를 들이받은 ‘로렌조’라는 이름의 소 무게는 자그마치 529kg이나 됐다.

남편 경기가 열리기 전 산츠는 SNS에서 잔뜩 기대감을 나타냈다.
산츠는 최근 트위터에서 “오는 9일에 여러분은 무얼 할 계획이냐”며 “테루엘로 놀러 오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투우 축제는 스페인에서 유명하며, 이보다 완벽한 즐길 거리는 없다고도 했었다.
산츠는 지난해 세고비아주 세풀베다 시장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는 중도우파 성향 국민당(PP)의 일원으로 과거 부시장을 역임한 적 있다.
바리오도 경기를 앞둔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모든 생각을 테루엘에 집중하고 있다”는 글을 올려 다가온 투우 경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편 로렌조의 혈통은 곧 끝나게 된다. 로렌조를 키우던 농장 주인이 어미 소를 도살장에 보낼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만, 로렌조 어미 도축이 이번 사고와 관련되었는지 확실히 밝혀진 내용은 없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바리오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트위터에서 애도했다. 세풀베다 시도 “투우사의 죽음을 슬퍼한다”며 “유가족들과 그의 부모에게 위로를 보낸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네티즌들은 남편 잃은 산츠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경기는 없어져야 한다”며 “날카로운 칼에 소가 죽느냐, 소뿔에 사람이 죽느냐를 놓고 싸우는 한심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스페인에서 투우사가 경기 중 사망한 건 지난 1985년 ‘이요’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투우사 호세 쿠베로 이후 31년 만에 처음이다. 현지 일간지 엘 파이스에 따르면 20세기에만 투우사 34명을 포함해 134명이 소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 최고 투우사로 알려졌던 프란시스코 리베라 오르도네스가 작년 투우 중 소뿔에 받혀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생명은 건졌다.
매년 약 2000회의 투우경기가 스페인에서 열리고 있다. 고야, 피카소 등의 유명 화가 작품에 등장하는 등 스페인 전통 축제로 자리한 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동물보호단체들은 투우사가 칼로 황소 죽이는 건 동물학대에 해당한다며 전면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영국 미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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