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은 세라(가명)씨는 17년 전 실종돼 사망한 채 발견된 엄마의 죽음에 얽힌 의문을 풀고 싶다며 제작진을 찾아왔다. 당시 열한 살이던 소녀는 어느새 훌쩍 자라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성인이 됐다.
세라씨의 엄마는 1999년 10월9일 홀연히 사라졌다. 당시 엄마 박씨는 퇴근 후 친정엄마와 어린 아들과 함께 저녁식사 중이었고, 세라씨는 TV를 보고 있었다. 가족의 평화로운 시간은 식사 중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깨지고 말았다.
박씨의 친정 엄마는 "제 딸이 하는 얘기로는 '지금 시간에는 택시도 없고, 버스도 없어서 나갈 수 없다'는 말을 했고, '태우러 오면 나갈 수 있다. 세라 아빠 사무실 앞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고 다시 상황을 전했다.
이 전화를 끝으로 박씨는 밤길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박씨는 그로부터 8개월 후 2000년 6월, 진주에서 20분 거리인 의령의 한 도로가 풀숲에서 발견됐다. 박씨의 시신은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고 이미 백골화가 진행 중이었다. 특히 두개골은 둔기에 의해 파열됐고, 상하의는 벗겨져 성폭행을 의심할 만한 정황도 발견됐다.
지갑과 핸드백을 포함한 모든 소지품이 현장에 그대로 있었지만 단 하나, 엄마의 휴대전화와 신발만이 보이지 않았다.
사건 당시 세라씨의 아빠는 집 근처 5분 거리에서 화물차 운전기사 소개소를 운영 중이었다. 엄마의 마지막 통화 내용으로 추측해 볼 때 발신자는 분명 아빠와 엄마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가족들이 당시 들었던 통화내용을 토대로 용의자를 추적하던 중 경찰은 마지막 통화의 발신자가 화물차 기사 탁종우(가명)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탁씨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그 문제 때문에도 경찰서에서 여러 번 수사를 했다"며 "나도 그 통화했다는 그걸로 처음에 경찰서에 가서 다 진술했다. 그 후로는 나하고는 더 이상…. 경찰서도 묻지 않았고 오라 소리도 안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수사선상에 오른 인물을 여러 명이었지만 경찰은 단 한 명에게서도 특별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당시 용의선상에 올랐던 또 다른 화물차 기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내용은 전혀 뜻밖이었다.
세라씨의 외삼촌 박경수(가명)씨는 "사실 나름대로 조금 놀랐던 게 강순배(가명)가 누나를 좋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감금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당시 엄마 박씨의 휴대전화 통신내역을 확인해 달라는 가족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발신자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이해할 수 없는 답을 내놨다. 17년 전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홀연히 사라진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풀리지 않은 의문을 추적해본다. 9일 밤 11시10분 방송.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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