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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거듭난다며 ‘목숨 건 성인식’

입력 : 2016-06-20 21:16:01 수정 : 2016-06-20 21: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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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소녀들 ‘할례’ 다룬 인권다큐 ‘소녀와 여자’

“할례를 한 여성들은 할례를 하지 않은 여성들을 심하게 구박하고 차별합니다. 정말 무자비하게 대해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일 때면 할례를 하지 않은 여성들은 의자에 앉지 못하고 구석에 서 있어야 해요. 곡식창고에도 못 들어갑니다. 남편들도 마을의 놀림거리가 되죠. 친구들은 술도 같이 안 마십니다. 이처럼 주변인들이 할례를 하게끔 만들어요. 그래서 결혼 후에 할례를 하는 경우도 많아요.”

<<사진 = 김효정 감독의 인권다큐멘터리 ‘소녀와 여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프리카 소녀들의 성인식 할례, 여성성기절제(FGM)를 다룬다. 할례는 아프리카와 중동 등 30여개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다.>>
우간다 국회의원 에리나 루타네(51)의 설명이다.

여성의 ‘할례’로 불리는 여성성기절제(FGM: Female Genital Mutilation)는 아프리카와 중동 등 30여개 나라에서 행해진다. 소말리에, 이집트, 수단에서는 여성의 80% 이상이 할례를 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할례를 하는 여성의 수는 300만명에 이르고, 하루 약 8000명의 소녀가 음핵을 포함한 외부 생식기를 제거, 봉합하는 시술(FGM)을 받는다.

김효정 감독의 신작 ‘소녀와 여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프리카 소녀들의 성인식 할례, 여성성기절제(FGM)를 다룬 인권다큐멘터리다. 국내 처음으로 FGM의 문제점과 현지의 인식 변화 등을 짚으며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인습은 버려야 한다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생생하게 포착해낸다.

“여자가 되기 위해선 전통을 따라야 해요.”

할례를 받은 14세 소녀 아니타 쾀보카는 마을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집으로 향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드디어 딸을 결혼시킬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한다. 그렇게 한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저는 꿈이 있어요. 아직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17세 소녀 엘리자 구티는 가족들의 강요를 피해 할례반대캠프로 피신했다. 집에 돌아가면 할례를 받아야 하는 그녀는 캠프기간이 끝나도 갈 곳이 없다. 그렇게 그녀는 소녀로 남았다.

다큐는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인권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할례 받은 소녀와 거부한 소녀, 둘의 입장을 통해 넓혀나간다.

FGM은 평균 3세에서 15세 사이의 어린 소녀들에게 행해진다. 수술 중 감염, 불임 심지어 사망까지 초래하는 일명 ‘죽음의 성인식’이다. 할례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의 순결을 위해 성욕을 억제해야 한다는 그릇된 믿음으로 전 세계 2억명의 여성에게 행해졌다. 또한 FGM은 여성들의 교육기회를 빼앗고 조혼을 부추기는 등 열악한 여성인권실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유엔은 2012년 FGM을 금지하기로 결의하고 해마다 2월6일을 ‘여성할례금지의날’로 지정, 세계인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할례를 마친 소녀는 목에 장식을 걸고 얼굴에는 흰 파우더를 바른다. 엄마와 자매들이 소녀의 주변을 돌며 전통춤을 춘다.

할례기간 중에는 이웃과 친척들을 초대해 소를 잡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지낸다.

“소녀가 할례를 하면 행동이 달라져. 더 똑똑해지고 예전의 아기 같은 행동이 사라지게 돼. 그래서 할례를 하지 않으면 영원히 아기에 머무르는 거지.”(할례 시술자)

“여자로서 아내로서 해야 할 도리, 어른을 공경하는 법에 대해서도 배웠어요.”(할례받은 소녀)

그러나 FGM 시술 후 치료제는 소오줌이나 소똥이 전부다. 파상풍 박테리아가 많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소가 우유와 고기를 제공하니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소똥으로 상처를 덮으면 지혈이 된다고 믿는다.

케냐의 주부 에블린 모엘(24)은 결혼 후 할례를 한 경우다.

“시어머니가 제게 할례를 권했어요. 제 지위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의 남편이 말을 이어간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아내는 아직 할례를 안 한 상태였죠. 임신한 뒤 할례를 하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주변의 친구들이 놀렸기 때문이죠. 할례기간 동안 집안 일이 밀렸어요. 옆집에 가서 음식을 얻어 먹기도 했습니다. 시술비 2500실링(25달러)을 내야 하는데 1500실링밖에 지불하질 못했어요. 갚아 나가야죠. 저는 할례를 했건 안 했건 똑같은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할례가 사라지지 않길 바라요. 우리는 무엇을 바꾸기 위해 할례를 하는 게 아닙니다. 군인들이 훈련하는 거랑 같아요. 인생에 대한 수업이자 조언을 듣고 배우는 기회예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배우는 거죠. 이제 서로 존중하며 남편과 부인으로서 더 잘 소통하길 원합니다. 우리에겐 앞으로 더 나은 미래가 열릴 거예요.”

반면, 학교와 할례 반대 캠프에서는 어린 소녀들에게 FGM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알려주며 당당히 시술거부 의사를 밝히라고 일깨운다.

할례를 피해 목숨을 걸고 도망친 엘리자와 또래 소녀 135명은 반대캠프에서 ‘여성은 신이 내린 특별한 존재’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엘리자는 한 달간의 캠프가 끝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버지가 강제로 할례를 시킬 것임을 알고 있다. 캠프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9명의 소녀들은 선생님과 함께 코모토보에 있는 보호센터로 갈 것을 결심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을 찾으라고 말씀하셨어요.”(캠프 소녀)

우간다 캄팔라대학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모니카 체비치라(23)는 자신을 가리키며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한다.

“외할머니 집에 갔다가 우연히 전교 1등을 독차지했던 엄마의 옛 성적표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러나 엄마는 남들이 그랬듯 할례를 받고 결혼을 한 뒤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죠. 아예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거예요.”

모니카의 어머니는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몹시 후회스럽다”고 털어놓으며 “어린 소녀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 마음 편히 학교에 다니면 좋겠다”고 밝힌다.

그녀는 “남자들은 여자들이 할례를 했든 안 했든 사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김효정 감독은 세계 5대 사막레이스 1051km를 완주, 아시아 여성 최초로 사막레이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저서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로도 유명하다.

“단 한번의 노력으로 FGM이 멈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 영화를 보고 FGM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한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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