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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최소의 집’은 욕망 걷어낸, 내 삶에 맞는 ‘최적의 집’

입력 : 2016-06-09 20:58:29 수정 : 2016-06-09 20: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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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최소의 집 # 집은 욕망인가

명색이 건축가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집을 수십 채 지었지만, 나는 아직 다른 사람이 설계한 집에서 살고 있다. 여태껏 나의 집을 지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조금 비슷한 경험이라면 남이 지은 집을 고쳐서 몇 년 살아본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매일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의 생각을 재보고 그것을 물질적으로 환원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모형을 만드는 일을 한다. 무엇을 원하세요, 어떤 방이 필요한가요, 냉장고는 몇 대나 가지고 계시나요?(정말 요즘은 다양한 용도의 냉장고를 이고 얹고 살고 있다.) 소파(대부분 걷어놓은 빨래나 읽다 던진 신문지 혹은 늘 피곤한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널브러져 있는 장소)는 꼭 놓으실 거예요? 등등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머릿속에 집 지을 이들의 생활을 옮겨 적는다. 그리고 백지를 앞에 놓고 그 하얀 면을 한참 노려본다. 그리고 그 위에 생각을 옮긴다. 마치 그림을 그리기 전에 대상을 눈알이 얼얼해질 정도로 노려보다가 그 잔상을 백지에 투사시키듯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매일 집을 그린다.

그럴 때가 되면 나는 내가 마치 환등기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나에게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은 총천연색으로 꼼꼼하게 그림이 새겨진 슬라이드 필름을 꽂는다. 나는 전원을 켠다. 요란하게 팬이 돌아가고 환한 불이 켜지며 영상이 하얀 벽에 투사된다. 그렇게 집을 그리고 집을 세워나간다.

간혹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본인 집을 지으신다면 어떤 집을 지으실 생각이에요?” “나의 집?” 텅 빈 방에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방으로 들어와 스위치를 올리자 내 눈 앞에 모든 사물이 살아나면서 혼란스러워지는 것처럼 무척 어지럽다.

나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대부분은 “글쎄요…” 하면서 대충 넘기고 생각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지만 가끔씩 궁금하기도 하다. 정말 내가 집을 짓는다면 어떤 집을 지을까?

그러나 어떤 집, 어떤 모양, 어떤 거실, 어떤 식당, 어떤 방, 어떤 복도, 어떤 마당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 또한 내가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생각의 문을 열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집의 모양과 내용과 디테일이 순식간에 쏟아져 내릴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생각과 한참 먼 거리에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는 내가 남의 욕망을 들어주고 그 욕망을 조합하고 배치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정작 나 자신의 욕망을 꺼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남의 집을 지어주며 나의 생각과 나의 집에 대한 온갖 생각과 바람을 집어넣기 때문에, 집에 대한 욕망이 남아있지 않다는 욕망총량의 법칙.

그렇다면 집은, 필요가 아니고 욕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에게 집이란 의식주라는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요소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세 가지 요소는 언제부턴가 사치의 대상이 되고 신분의 상징으로 왜곡되었다. 그래서 집에는 욕망이 투사되기도 하고 그 욕망이 좌절되기도 한다. 또한 그 욕망 때문에 인간은 한없이 약해진다. 물질을 욕망으로 환원하고 그것을 가치로 교환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수한 재능이며, 우리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으로 자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이며 쇠사슬이기도 하다. 그 쇠사슬을 치렁치렁 몸에 옭아매며 그 개수를 자랑하다가 어느 순간 무거워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인간은 외로워지고 슬퍼진다. 


강원도 평창에 있는 법정 스님의 일월암 근처에 지어진 현대식 암자 ‘정·방(靜·房)’. 건축가 김희준은 집이 원래부터 있었던 듯 자연적인 재료로 소나무숲 안에 뿌리들을 건드리지 않고 땅에서 들어올려 앉혔다.
김용관 제공

# 집은 상품인가

집을 그렇게 상품화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불순한 세력들의 작품이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세력’들은 마치 암 덩어리처럼 사회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우리 몸의 영양소를 다 빨아먹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키에르 케고르가 이야기한 ‘죽음에 이르는 병’이 불안이라면, 현실의 우리나라에 죽음에 이르는 병은 그런 세력들이 만들어낸 물질에 대한 불안, 혹은 집에 대한 불안이다. 아파트 청약을 하고 배정을 받고 그 집을 불려서 이사하고 또 불려서 이사하는 동안 우리는 무척 풍요로워지고 무척 유복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정말 오해이다. 결국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즉 빈손으로 와서 잠시 사회가 위탁한 물질적 풍요가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고 살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인데, 그런 인생을 반추하게 하는 지점을 제공한 사람이 있다. 법정 스님이라고 아주 ‘맑고 향기로운’ 정신을 가진 스님이다. 그분이 평생 이야기하고 평생 실천한 정신은 ‘무소유’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는 삶, 어찌 보면 무척 이상적이고 어찌 보면 무척 무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은 깊은 산중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며 학처럼 고고하게 살다 가셨다.

법정 스님이 추구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삶이라기보다는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최소의 삶’으로 해석된다. 그걸 몸으로 직접 실천하며 1975년 순천 조계산 불일암에서 산중생활을 시작한다. 1992년 세속의 나이가 환갑이 되던 해에 산속 토굴 심지어 전기와 수도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강원도 진부에 있는 일월암)으로 들어갔고, 1997년 강원도 평창에 폐가를 개조한 수류산방을 거친다. 법정 스님을 흠모한 김영한이 자신이 운영하던 성북동 대원각을 기증하여 길상사가 되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은 그곳에서 주석은 하였지만 머물지는 않고 법회를 마치면 이내 강원도의 토굴로 향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소유를 실천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밝게 빛을 주었던 법정 스님은, 산속까지 자신을 찾는 사람들의 불편에 눈을 돌릴 수 없었는지 인근에 객실을 하나 마련하자는 제안에 동의한다.

“한적한 곳에 일월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흙과 나무로 지은 일월암은 전기도 없고 주방도 없었다. 화장실은 저만치 따로 떨어져 있었다 … 일월암 곁에 5평 규모의 조그만 객실을 짓기로 하였다. 전기도 들어오고 주방과 화장실, 옷장, 신발장 그리고 보일러까지 갖춘 현대식 암자가 계획되었다. 스님은 조그만 컨테이너나 하나 갖다놓으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지어진 게 일월암 객실이다.”(건축가 김희준)

데이비드 소로가 지어놓은 월든 호수 근처의 오두막보다 한 평(3.3㎡) 정도 큰 18㎡ 규모의 집이었는데 그 설계를 김희준이라는 건축가가 맡아서 진행했다. 어느 날 그는 아는 분이 불러서 제주도에 가서 어떤 스님과 동행하게 된다. 평소에 세상사에 별로 관심이 없고 작업에만 열중하였던 ‘은둔형 건축가’였던 그는 동행한 분이 법정 스님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여하튼 움직이는 모습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강원도 진부에서 그 스님을 다시 뵙게 되고 조그만 암자를 설계한다.

‘일월암 객실(손님이 기거하는 작은 암자)’은 모든 기능을 네모 안에 집어넣으며 재료를 단순화한 집이다. 물론 그 집 또한 법정 스님은 머물지 않았다. 기능 자체가 손님을 위한 집이었기도 했지만 현대적인 재료와 편리한 시설이 법정 스님에게는 편안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법정 스님은 우리를 얽매는 모든 욕망과 그것이 야기하는 모든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식 암자 ‘정·방(靜·房)’은 띠처럼 공간을 두른 천장에서 고요한 빛이 스며든다.
김용관 제공


# 최소의 집

욕망으로서의 집, 상품으로서의 집이 아닌 본연의 집은 무엇인가.

집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어떤 공간을 만들어서 쉬는 곳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도 담기고, 가족도 담기고, 추억도 담기는 곳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집도 또 하나의 식구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집은 마치 어떤 생명체처럼 사람과 함께 자라고, 이야기를 담고 시간을 담는다. 예전에는 한칸 방, 두칸 방에서 살림을 시작했다가 식구가 늘어나면 조금씩 늘렸다가, 또 옆에 별채도 짓다가 아이들이 나가면 다시 그걸 줄이는 과정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모습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어쨌든 가족 구성원이 변함에 따라 집도 많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집도 마치 생물처럼 자라고 늙고 연륜이 쌓인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80년 된 집을 고친 적이 있는데, 그 집을 의뢰하신 분이 70세가 넘은 분이다. 그는 자기가 어렸을 때 이 집에서 이 창문을 통해서 뭘 봤고, 결혼을 해서 어느 방에서 살았고, 그러면서 집을 어떻게 고쳐나갔고 하는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들려주었다. 함께 일을 하는 일 년 동안 내내 집의 설계를 한다기보다는 그분과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런 이야기들을 끌어내는 게 진짜 주인에게 맞는 집을 지을 수 있는 단서들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워낙 이사를 많이 하니까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며 삶이 집과 함께 자라는 경험을 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단지 직장을 옮겼다든지, 애들이 커서 학교를 가야 된다든지 그런 라이프 사이클의 변화에 따른 이유도 있지만 모두 알다시피 부동산이 가장 큰 재산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집을 장만해서 집값이 오르면 팔고, 다시 사고…. 그렇게 집에 대해서 우리가 편안하게 마음먹지 못하고 몇 십 년이 지나온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좀 꺾이면서, 마치 오랜 백일몽에서 깨어나듯 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더 이상 집은 재산 증식의 유용한 도구가 되지 못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소유와 욕망으로 여러 겹 칠해진 집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에 대한 실천적인 방식을 건축가의 입장에서 고민하다가, 2013년 가을 <최소의 집>이라는 타이틀로 기획자인 건축가 정영한(가로세로 9m 크기의 9×9 실험주택), 김희준(수도자를 위한 연면적 18㎡ 크기의 암자 ‘정·방’), 그리고 임형남·노은주(금산주택)가 모여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각자 생각한 의미 있는 최소 단위로서의 집을 고민한 결과물들을 내놓은 전시였다. 집을 포장하고 있던 각종 욕망과 거품을 걷어내고 바라본 집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최소의 집’ 전시는 주제에 공감하는 건축가들에게로 계속 바통이 이어져서, 오는 7월 7번째 전시를 앞두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최소의 집은 삶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를 갖춘 ‘적정한 집’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일정한 나이에 일정한 크기의 일정한 형식의 집에 살아야 한다는 식의 강박이 존재해 왔다. 그래서 자신만의 공간을 되찾기 위해 짓는 ‘최소의 집’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의식의 전환’이다. 여기서 ‘최소의 집’은 내 몸과 내 삶에 맞는 ‘최적의 집’이며 단순히 규모가 작은 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이며, 자기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있다. 집을 통해 자기가 완성된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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