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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터널의 어둠 가르며…오늘도 '시민의 발'은 달린다

입력 : 2016-05-11 06:50:00 수정 : 2016-05-11 01: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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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꺼진 일상’ 지하철 기관사의 하루
서울도시철도공사 황성호 기관사가 지하철을 운행하고 있다. 노출시간 0.8초, 지하터널이 한 점으로 모여 보인다. 모든 게 점 하나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황씨가 어둑어둑한 고덕차량사업소에서 당일 운행할 전동차를 점검하고 있다. 전동차에서 형광등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하루 평균 이용객 500만명 이상인 서울지하철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매일 이용하는 대중교통이지만 버스와는 달리 ‘볼 일 없는’ 기관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저 지하철 문이 열리면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4월 마지막 주 목요일 밤, 지하철 기관사의 열여섯 시간을 따라가 봤다.

열쇠를 들어 보여준다. 크고 무거워 보인다. 수많은 승객들을 실어 나르는 전동차의 열쇠다.
오후 6시 55분, 황성호(50) 기관사가 5호선 답십리역 개찰구를 통과했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황씨가 퇴근길 인파를 헤치고 승강장 맨 앞에 섰다. 5분 뒤 약속이나 한 듯 지하철 5167호가 나타났다. 그는 게걸음으로 맨 앞칸 기관실에 탑승했다. 기관사들에게 허락된 공간은 세 뼘 남짓했다. 졸리거나 집중력이 떨어질 때마다 의자에서 일어섰다. 멀리 내다보려 허리를 굽힐 때마다 185㎝의 큰 키가 눈에 띄었다. 원래 꿈은 농구선수였다고 한다. 

운행 중인 지하철 맞은편으로 다른 전동차가 다가오고 있다. 손을 들어 인사했다.
폐쇄회로(CC)TV를 통해 승객의 탑승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전동차 문을 여닫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1994년 서울도시철도공사 창사 때 공채 1기로 입사한 황씨는 한 번도 5호선을 떠난 적이 없다. 그는 5호선과 운명을 같이하며 새로운 사람을 맞았고 함께한 이들을 보내기도 했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악몽을 자주 꾼다고 한다. “꿈속에서 사람을 치기도 하고, 정차역을 그냥 지나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지요.” 작년 설, 실수로 애오개역을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심하게 마음고생 했던 일을 회상했다. 보조 탑승자가 있는 다른 지하철 운영사와 달리 5678호선은 창사 이래 줄곧 ‘1인 승무제’를 이행해왔다. 홀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기관사의 부담감이 어느 정도일지 쉽게 가늠되지 않았다. 먼지 속에서 조곤조곤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던 그는 목이 따가운지 연신 물을 들이켰다.

오전 근무에 나서며 안약을 넣고 있다. “갑자기 어둡거나 밝아지는 환경에 오래도록 노출돼 눈이 자주 건조해진다”며 “이거 한 방울이면 잠시나마 괜찮아진다”고 말했다.
5호선엔 햇볕이 드는 구간이 없다. 수많은 승객의 안전 상태를 일일이 확인해가며 캄캄하고 좁은 지하터널을 통과하는 일은 매우 고된 노동이었다. 앞 유리창을 통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무한 단순함이었다. 오전의 푸른 어스름도, 정오의 볕도, 해질녘 붉은 석양도 만날 수 없었다. “어두운 기관실에서 앞만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멍해진다”며 눈에 안약을 넣었다. 그는 올해 8월 총 운행거리 5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꼬박 2년을 홀로 빛이 들지 않는 기관실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황씨가 서울 상일동역 부근에서 열차 회송을 위해 반대편 기관실로 이동하고 있다. 앞뒤가 같은 지하철에 후진은 없다.
야간 운행을 마친 뒤 서울 강동구 고덕차량사업소에서 열차를 입고하고 있다. 사람도 철마(鐵馬)도 지치는 때이다.


전동차를 입고하며 동료와 서로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다.
지난달에만 지하철 기관사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3년 이후로 아홉 번째라고 한다. 거듭되는 개별적 비극은 ‘지금 우리는 위태롭다’는 보편적 메시지를 보여준다. 반복은 곧 일상이 된다. 

야근을 마치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다시 5호선 답십리역 4번 출구다. 그의 얼굴에 묻은 빛과 미소가 다행스럽다.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지하철 출퇴근 길, 그 뒤에 묵묵히 시민의 발이 되어 온 기관사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한다. 그들의 일상이 곧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사진·글=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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