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주된 풍자 대상은 미국 공화당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쪽(end of the Republic)은 이보다 더 좋아 보인 적이 없다”면서 “공화당 경선이 너무나 잘되고 있다니 축하한다. 계속 그렇게 진행하시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부동산 재벌 출신으로 경선 과정에서 ‘막말’ 파문에도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대한 공화당의 곤란한 처지를 꼬집은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 트럼프 후보를 비꼬기도 했습니다. 그는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가 외교정책 경험이 전무하다고 걱정한다죠?”라며 “솔직히 그는 수년 동안 숱한 세계 지도자들을 만났잖아요.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 등등”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가 미스USA와 미스 유니버스 등 각종 미인대회(흔히 미스코리아 등을 민간 외교사절이라고 표현합니다)를 주최해온 것을 빗댄 것인데, 참 신랄하죠?
오바마 대통령은 특유의 ‘자학개그’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그는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이제 사망 선고가 떨어질 날을 세고 있다”며 “지난주 만난 영국의 조지 왕자는 심지어 샤워가운을 입고 나왔다. 외교의전을 완전히 무시하다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이어 “딱 두 마디만 더 하겠다. 오바마는 간다(Obama Out)”는 말을 남기고 청중의 기립박수 속에 연단을 떠났습니다.
이번 만찬연설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년여간 펼쳐온 국정이나 정책에 대한 평가는 크게 갈립니다. 이같은 비판과 논쟁, 대립 끝에 보다 나은 접점을 찾는 게 정치의 본질이고, 민주주의 정신일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내용과 소통 방식은 대체로 권위적이고 딱딱한 모습의 대통령만 봐온 우리로선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일보가 뒤늦게 오바마 대통령의 WHCD 명연설 7가지 대목을 정리하는 이유입니다.
■ 2015년 4월 25일
-정부가 이란과 핵협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공화당이 ‘반대파’ 이스라엘 정상에게 상·하원 합동연설 기회를 준 것을 비판하며.
■ 2014년 5월 3일
-우크라이나 문제로 미국 등 서방과 갈등을 빚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3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것을 꼬집으며.
■ 2013년 4월 27일
-2기 취임식 때 일부 패션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던 미셸 오바마의 뱅 스타일 앞머리와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선보이며.
■ 2012년 4월 28일
-오바마케어 등 정부의 주요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다수당 공화당을 비판하며.
■ 2011년 4월 30일
-자신의 출생증명서 공개를 촉구해 화제를 모았던 도널드 트럼프는 이슈를 만들어내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갖췄다’고 비꼬며.
■ 2010년 5월 1일
-‘월스트리트의 황제’ 골드만삭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혐의로 피소된 것을 겨냥해.
■ 2009년 5월 9일
-힐러리 클린턴 의원과의 사이가 여전히 껄끄러운 이유는 그녀가 신종플루 발생 지역에서 돌아온 뒤 자신에게 키스했기 때문이라고 농담하며.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