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정 조종사는 사실 현대판 광부였다. 그들은 심해와 같은 등급이었다. 심해 위에는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식용어류, 땅에는 값싸면서 환경찬화적인 에너지를 원하는 모순적 시민, 그 위에는 시민들의 이율배반을 이용해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돈을 버는 초고층 빌딩 소유주들이 지배했다. 한순간에 그들과 파랑함 승조원들까지 절멸당했다.
살아남은 이들이 애초 심해까지 내려온 목적에는 ‘루시’라는 마지막 남은 물고기를 연구하기 위한 업무도 있었다. 루시는 빛을 내어 ‘스노’(눈: 심해로 떨어지는 유기물 알갱이)를 받아먹고 받아먹은 스노로 빛을 내는 물고기다. 핵폭발로 태양조차 빛을 잃은 캄캄한 심해에서 루시는 유일하게 빛을 내는, 꼬마 물고기들에게는 작은 태양이었다. ‘(파랑함) 밖에는 깊이를 모를 어둠이 흐르고 있었다. 모니터에 손을 대면 손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어둠이었다.’
신이 선택한 인류가 깨달은 위대한 자각이다.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며 몸은 신이 서명한 문서요 나는 그것을 지킬 의무가 있는 우주 생태계의 순일한 존재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끝이 없는 기록이다. 인류가 멸망한다 해도, 생명의 기억이 있는 곳에서라면 언제든 다시 시작될 미완성의 이야기이다.’
깊은 바닷속에서 빛을 내며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밤하늘 별처럼 바라보는 판타지이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가 희망을 가꾼다는 서사는 그리 새롭지 않지만 심해를 배경으로 해박한 지식들을 잘 녹여 한편의 서사시처럼 가꾸어낸 작가의 공력이 빛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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