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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꿈틀대는 악… 인간의 욕망·부조리를 파헤치다

입력 : 2016-04-21 21:00:14 수정 : 2016-04-21 21: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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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석 두번째 장편소설 ‘아메리칸 홀리’ 소설가 양헌석(60)이 두 번째 장편소설 ‘아메리칸 홀리’(문학동네)를 펴냈다. 미국 한인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그 부조리를 천착한 작품이다. 2002년 도미해 소설의 배경지에서 10여 년간 생업에 종사하며 쌓은 체험을 길어 올려 원색의 욕망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인간들의 내면과 약육강식의 회색 정글을 치밀하게 들여다보았다.

주인공 남자 이씨는 뉴욕에서 한인 대상으로 발행하는 일간지 편집국장이다. 그가 어느날 음습한 주차장에서 테러를 당한다. 범인은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성기에는 칼자국을 남겼다. 소홀한 경찰 수사를 신뢰하지 못한 그는 자신이 직접 범인 찾기에 나선다. 용의자들을 떠올리다보니 자연스레 자신의 삶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가 교묘하게 왕따를 시켜 몰아냈던 B라는 남자, 자신의 집을 임대해 하숙을 운영하지만 정체가 불분명한 이, 그와 다투었던 변호사와 목사들까지 자신에게 물리적 테러를 할 만한 이들은 넘치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다. 범인을 찾는 과정은 자신이 누구였던가를 스스로 성찰하게 만든다. 그가 테러의 피해자인 건 맞지만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그이야말로 가해자라는 사실이 섬뜩하다.

미국 한인사회를 배경으로 욕망의 밑바닥을 투명하게 드러낸 소설가 양헌석. 그는 “이민사회는 떠나온 모체를 여과 없이 투명하게 더 잘 보여주는 축소판”이라면서 “이민사회를 시니컬하게 그린 게 아니라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인 인간들의 세계를 들여다 본 것”이라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술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다가 병들어서 아들에게 아편을 강요하는 아버지를 그는 모르핀을 과다 투여해 죽였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도 곧 죽었다. 물정 모르고 자신의 자리까지 잠재적으로 위협할 대상인 남자 B는 교묘하게 왕따시켜 축출했다. 구린 구석이 많은 변호사와 목사를 공격하고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종국에는 B를 절벽에서 밀어 죽였다. 이 소설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이 살인에 할애된다. 그는 주정부 지원으로 테러 피해자를 위무하는 정신과 의사 닥터 고와 상담하면서 말한다.

“사실 방아쇠를 당길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방아쇠를 당겨야죠.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으면 당연히 그것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잊어야 하고요.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나요?”

이 대목에서 닥터 고는 이미 그가 최소한 준사이코패스임을 직감했다.

“사실 피해자인데 마치 가해자처럼 느껴지는… 뭐랄까, 아주 냉담한, 내면에 분노와 증오심이 가득 차 있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마치 두 개의 세계를 갖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겉으로 드러난 세계는 이성으로 잘 무장되어 있지만 그 속이 간단치 않은 것 같아서요.”

한국에서 언론계에 종사하다 도미한 양헌석은 소설 출간을 계기로 서울에 와서 “혹성 같은 낯선 세계를 낯선 시각으로 그렸으니 더욱 낯설어보일 것”이라면서 “내 안에서도 발견되지만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한다는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주인공에 대해 분노하면서 쓴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인공이 악한이어서는 안 된다는 추리나 스릴러의 규칙을 깼고 노골적인 장면도 세세하게 묘사했지만 상업적인 용도는 아니며 글 쓰는 자의 문학적 욕망도 버렸다”면서 “상투적인 글쓰기의 관행을 모두 위반했기 때문에 이 소설은 오히려 더 순수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소설가 조정래는 “선하거나 악한 자의 시각으로 그려진 통상적인 소설과는 달리 악의 심연을 형상화해내는 쉽지 않은 독창성을 보인다”며 “악의 완성이란 특이한 주제에 도전한 이 소설은 그의 오랜 공백을 메워줄 성공작”이라고 추천사에 썼다.

소설 표제인 ‘아메리칸 홀리’는 키가 큰 상록수로 뾰족한 육각형 잎이 크리스마스카드 문양으로 자주 쓰였던 미국의 호랑가시나무다. 이 나무가 3층 높이의 뉴욕 펜트하우스 침실 창문 너머로 작가가 자고 일어날 때마다 굽어보곤 했다는데 소설 속 ‘준사이코패스’ 주인공이 정신상담을 받는 정신병원도 이 나무가 에워싸고 있다. 거대한 정신병동 같은 사회를 굽어보는 상징적인 나무인 셈이다. 작가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후세인과 빈 라덴을 죽이는 미국과 B를 죽이는 주인공의 행태를 연결시킨다. 1982년 ‘소설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소설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아가베의 꽃’, 장편 ‘오랑캐꽃’을 펴낸 뒤 침묵했던 양헌석은 미국 생활 14년차에 그곳의 삶을 압축한 작품을 들고 작단에 복귀했다. 치열하게 현장을 살아낸 뒤 몸으로 써낸 소설인 셈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묻는다. “입을 열 때마다 청산유수인 당신은 그런 당신이 두렵지 않은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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