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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을 묻다] 육아·교육·노후 막막…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입력 : 2016-03-15 19:39:04 수정 : 2016-03-16 13: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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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장벽을 넘어서자] ④ 구호뿐인 사회복지… 머나먼 '복지한국'
‘복지를 위해 뛰겠습니다.’ 다음달 총선을 한 달 앞둔 요즘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문구다.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복지’를 핵심공약으로 걸고 있다. ‘복지의 정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도 국민의 복지 체감도를 높이겠다며 ‘찾아가는 복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처럼 여기저기서 복지를 말하는데, 정작 대다수 국민은 복지를 여전히 ‘나와 먼 이야기’로 여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복지가 구호만 요란할 뿐 피부로 와닿는 게 별로 없다는 불평불만이 많다.

◆헬조선·흙수저… 낮은 삶의 만족도


복지(福祉)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한 삶’이다. 따라서 사회복지는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빈곤·실업·질병 등을 예방하고 삶의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한 인프라와 제도적 노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복지 만족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각종 지표를 보면 한국의 사회복지 환경은 박수받기 힘든 수준이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1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8점으로 34개 회원국 중 27위에 그쳤다. 삶의 만족도가 낮다는 것은 사회복지망이 곳곳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덴마크·스위스(각각 7.5점), 노르웨이(7.4점), 네덜란드(7.3점) 등 비교적 사회복지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로 평가받는 북유럽 국가에서 삶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는 것이 방증한다.

북유럽 국가들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복지를 보장한다면 한국 사회는 출생 이후부터 개인이 스스로 생존의 길을 찾는 과정의 연속이다. ‘흙수저’와 ‘금수저’, ‘헬조선’ 등의 신조어가 판을 치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흙수저·금수저는 태어날 때 부모의 재력이 평생 삶에 걸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빗댄 표현이고, 지옥(hell·헬)을 뜻하는 단어를 붙인 헬조선은 살기 팍팍한 현실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는 사회복지 안전망을 믿고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다는 기대보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불안·위기감이 스며 있다. 

이들 단어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 현상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국민 상당수가 공감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국가미래연구원의 20∼40대 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65.3%가 ‘헬조선 의미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 은퇴 후 삶에 많은 사람이 비관적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푸르덴셜생명이 최근 한국과 미국, 멕시코, 대만의 은퇴자와 은퇴예정자를 대상으로 은퇴에 대한 생각과 노후 관심사 등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들은 두려움·우울·비관 등 부정적인 정서를 기대감·희망·낙관 등 긍정적인 정서보다 강하게 표출했다. 반면 멕시코나 대만은 긍정적인 감정이 훨씬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장모(44)씨는 “복지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에서 노후란 여유롭게 여행을 다니거나 취미생활을 갖는 것이 떠오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선 대다수가 ‘어떻게 노후를 살아가야 하나’라고 막막함을 느낀다”며 “국가만 믿고 있다가는 큰코 다칠 것 같아서 국민연금 외에 개인연금을 별도로 가입했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은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기류를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 1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성인 남녀 1655명을 대상으로 ‘이민 의향’을 조사한 결과 78.6%(1301명)가 ‘갈 수 있으면 가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민을 가고 싶은 이유(복수응답)로는 △일에 쫓기는 것보다 삶의 여유가 필요해서(56.4%) △대체로 근로조건이 열악해서(52.7%) △소득불평등 문제가 심해서(47.4%) △직업 및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서(47.4%)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44.4%) △해외의 선진복지제도를 누리고 싶어서(30.7%) 등 다양했다. 특히 이민 갈 나라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복지’(41.2%)가 꼽힌 점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복지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체감 못하는 복지제도, 사회 불신으로 이어져


지난해 말 발표된 통계청의 ‘201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건의료서비스가 2년 전보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52.7%, 사회보장제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48.5%로 절반수준에 그쳤다.

복지예산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낮은 복지체감도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올해 복지 예산은 123조원으로, 전체 정부 예산의 30%가 넘는다. 연간 증가율도 7.4%나 된다. 복지에 쓰는 돈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정책 효과는 신통치 않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복지시스템이 소득 최하위계층에 집중되면서 소득 하위계층이나 중산층 등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누릴 만한 복지체계는 느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복지시스템은 결국 육아나 교육, 노후 등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밀접한 영향이 있는 요소들에 대해 사회가 어느 정도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게끔 보장해 주는 것”이라며 “그런데 그런 부분이 많이 취약하다 보니 정부가 복지 지출을 늘려도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불신이 많다”고 설명했다.

현행 복지시스템 자체가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높다.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 바로 위의 차상위계층은 잠재적 빈곤계층으로 불리지만 복지 혜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예컨대 건강상 이유 등으로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소득지원 등을 받을 수 있지만, 소득이 낮아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식으로 곳곳에서 복지 사각지대가 생겨난다.

국가와 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배경이다. 직장인 이모(35)씨는 “대학 때 나라에서 빌린 학자금을 아직도 갚고 있는 데다 아이도 국공립어린이집에 보내기 힘들어 민간 어린이집에 보내는 등 경제적 압박이 심하다”며 “노후도 그렇고 사회에서 기대할 게 없다 보니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취업을 하지 못했을 때, 실직했을 때, 병에 걸렸을 때 등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국가가 자신을 구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높지 않다 보니 복지에 들어가는 돈을 아깝게 생각해 조세저항이 일어나기도 한다.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들은 복지 재원을 위해 세금을 많이 걷고 있지만 조세저항이 덜한 편이다. 자기들이 낸 세금만큼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서다.

현재 덴마크에서 거주 중인 홍아란(40·여)씨는 “사람들이 소득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지만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실직했을 때나 은퇴했을 때 그 돈이 안전망이 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지금 내가 낸 돈이 어려운 누군가를 돕고,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나 역시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신뢰가 강해 삶에 대한 불안감이 적다”고 만족스러워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국가, 사회신뢰의 관계 분석과 시사점’에 따르면 복지국가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각종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결속력(29개국 중 21위) △사회적 안전성(34개국 중 29위) △사회적 형평성(34개국 중 28위) 전 분야에서 사회통합 정도가 약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복지제도 발달 정도가 이 같은 사회통합과 사회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보고서는 “단순히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형태의 복지국가를 추구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라며 “사회복지제도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 안정적이고 공평한 분배 상태를 달성해야 사회 신뢰수준도 높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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