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를 위해 뛰겠습니다.’ 다음달 총선을 한 달 앞둔 요즘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문구다.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복지’를 핵심공약으로 걸고 있다. ‘복지의 정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도 국민의 복지 체감도를 높이겠다며 ‘찾아가는 복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처럼 여기저기서 복지를 말하는데, 정작 대다수 국민은 복지를 여전히 ‘나와 먼 이야기’로 여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복지가 구호만 요란할 뿐 피부로 와닿는 게 별로 없다는 불평불만이 많다.
복지(福祉)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한 삶’이다. 따라서 사회복지는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빈곤·실업·질병 등을 예방하고 삶의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한 인프라와 제도적 노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은퇴 후 삶에 많은 사람이 비관적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푸르덴셜생명이 최근 한국과 미국, 멕시코, 대만의 은퇴자와 은퇴예정자를 대상으로 은퇴에 대한 생각과 노후 관심사 등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들은 두려움·우울·비관 등 부정적인 정서를 기대감·희망·낙관 등 긍정적인 정서보다 강하게 표출했다. 반면 멕시코나 대만은 긍정적인 감정이 훨씬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은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기류를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 1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성인 남녀 1655명을 대상으로 ‘이민 의향’을 조사한 결과 78.6%(1301명)가 ‘갈 수 있으면 가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민을 가고 싶은 이유(복수응답)로는 △일에 쫓기는 것보다 삶의 여유가 필요해서(56.4%) △대체로 근로조건이 열악해서(52.7%) △소득불평등 문제가 심해서(47.4%) △직업 및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서(47.4%)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44.4%) △해외의 선진복지제도를 누리고 싶어서(30.7%) 등 다양했다. 특히 이민 갈 나라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복지’(41.2%)가 꼽힌 점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복지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말 발표된 통계청의 ‘201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건의료서비스가 2년 전보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52.7%, 사회보장제도가 좋아졌다는 응답은 48.5%로 절반수준에 그쳤다.
복지예산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낮은 복지체감도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올해 복지 예산은 123조원으로, 전체 정부 예산의 30%가 넘는다. 연간 증가율도 7.4%나 된다. 복지에 쓰는 돈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정책 효과는 신통치 않다는 얘기다.
현행 복지시스템 자체가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높다.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 바로 위의 차상위계층은 잠재적 빈곤계층으로 불리지만 복지 혜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예컨대 건강상 이유 등으로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소득지원 등을 받을 수 있지만, 소득이 낮아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식으로 곳곳에서 복지 사각지대가 생겨난다.
국가와 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배경이다. 직장인 이모(35)씨는 “대학 때 나라에서 빌린 학자금을 아직도 갚고 있는 데다 아이도 국공립어린이집에 보내기 힘들어 민간 어린이집에 보내는 등 경제적 압박이 심하다”며 “노후도 그렇고 사회에서 기대할 게 없다 보니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현재 덴마크에서 거주 중인 홍아란(40·여)씨는 “사람들이 소득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지만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실직했을 때나 은퇴했을 때 그 돈이 안전망이 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지금 내가 낸 돈이 어려운 누군가를 돕고, 내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나 역시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신뢰가 강해 삶에 대한 불안감이 적다”고 만족스러워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국가, 사회신뢰의 관계 분석과 시사점’에 따르면 복지국가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각종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결속력(29개국 중 21위) △사회적 안전성(34개국 중 29위) △사회적 형평성(34개국 중 28위) 전 분야에서 사회통합 정도가 약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복지제도 발달 정도가 이 같은 사회통합과 사회에 대한 신뢰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보고서는 “단순히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형태의 복지국가를 추구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라며 “사회복지제도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다. 안정적이고 공평한 분배 상태를 달성해야 사회 신뢰수준도 높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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