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내 마음의 섬, 구수한 시골… 어디로 가볼까나

입력 : 2016-02-04 20:54:50 수정 : 2016-02-04 20:54:4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다른 듯 닮은 두 작가의 이야기 주변부의 삶을 핍진하게 그려온 두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거문도에 살면서 섬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어 온 한창훈(53)과 ‘제2의 이문구’라는 별호까지 따라다니는 농사짓는 작가 이시백(60)이 그들이다. 한창훈은 추억 속 섬 청소년들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경장편 ‘순정’을, 이시백은 농촌을 배경으로 집필한 단편을 모아 ‘응달 너구리’를 펴냈다.

◆‘순정’

‘순정’(책방)은 한창훈이 그동안 써온 섬 사람들 이야기 중에선 가장 젊고 ‘순정한’ 버전의 소설이다. 열일곱살 무렵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또래의 섬 출신 아이들 다섯 명의 애틋한 추억을 담았다. 섬에서 태어나 같이 중학교까지 다녔지만 또래 중 수옥이란 아이는 어릴 때부터 10미터도 혼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를 지녔다. 범실 길자 용철 같은 친구들은 수옥을 업고 다니며 늘 같이 놀았는데, 다리만 불편하달 뿐 예쁘고 팝송을 좋아하는 수옥만 홀로 섬에 남고 친구들은 육지 고등학교로 떠났다. 방학 때 우르르 고향에 온 아이들은 수옥을 둘러싸고 악동들의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며 이야기는 나아간다. 한창훈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 입담이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구사되거니와 아이들의 입을 통해 발산되는 사투리는 더 감칠맛 난다. 

이 소설의 절정은 죽은 수옥을 아이들끼리 장사지내는 대목이다. 어른들은 성인이 아닌, 그것도 객사한 사체를 당일로 애장터에 묻으려 하지만 친구들이 떼를 써서 저희들끼리 상여꽃을 만들고 장지를 파 3일장을 치른다. 다른 것은 모두 어른들 장례식 흉내를 냈지만 상여가 나가는데 앞서서 상여소리를 부를 상두꾼만은 빌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수옥이 생전에 좋아했던 팝송을 상두가 대신 틀고 따라부르면서 꽃상여를 메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장지로 행진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영화를 염두에 둔 200자 원고지 550장짜리 경장편이다. 2003년 펴낸 연작 장편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에 40장 분량으로 짧게 붙였던 ‘저 먼 과거 속의 소녀’를 시나리오와 소설로 개작한 것인데 너무 짧게 쓴 것이 두고두고 아쉬워 다시 썼다고 한다. 한창훈은 “아무리 센 상상력도 현실은 못 따라간다”면서 “그 섬 구석에서 그렇게 멋진 짓을 했으리라고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실제 내가 경험했던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EXO 도경수와 김수현을 주연으로 세워 24일 개봉한다. 

◆‘응달 너구리


“보기엔 영 춥구 딱혀두 그 나름으루 의뭉스럽게 살아가는 인생을 응달 너구리라 헌다는디, 내야 뭐 의뭉스러운 꾀래도 낼 재주나 있나유? 그저 벤소 깐에 세워 놓은 묵은 빗자루쥬, 뭐.”

충청도 사투리가 의뭉스럽고 천연덕스럽게 흘러가는 ‘응달 너구리’(한겨레출판) 속 이런 대사는 사실 ‘이문구’ 이래 맛보기 힘들었던 생생한 토속어 문장이다. 농촌소설을 쓰기 위해 경기 화성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말술을 ‘유조차’ 분량으로 마셨던 이문구는 1970~80년대 농촌 풍경을 다루었다. 이시백은 17년 전 고향인 경기 여주 땅으로 ‘귀농’해 주경야독을 해온 소설가로 이문구 문체를 구사하긴 하되 예전과는 다시 확연히 달라진 농촌풍경을 구수한 리얼리즘으로 확보해낸다. 위에 언급한 대사는 표제작의 인물 ‘삼봉’이 읊은 것이거니와 지구촌을 누빈 백전노장 외교관 출신 황씨가 시골로 들어와 살면서 처음에는 그를 무시하다가 큰코 다친 뒤로는 자신도 모르게 조아리게 된 흥미로운 캐릭터다.

이번 소설집에는 4대강 개발에 대한 농민들의 민심이 드러난 단편들이 많다. 작가의 거주공간이 여주이니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슈였던 셈인데 이를 두고 농민들끼리 나누는 대화는 서글프고 황량하다. “강을 막으면 그 물이 썩어…” “돈만 있음 죽은 이두 살려내는 시상여. 강 썩으믄 서울 가서 살면 되지… 머리에 띠 두르구 악쓴다구 생이 산댜? 요즘은 돈이 생명여.”

작가는 소설가 정아은과 나눈 책 말미 대담에서 “지금은 농촌소설이라는 장르도 근대 문화유산 정도로 취급받지만 아직도 300만명이 농사를 짓고 있다”면서 “자기가 속해 있는 계급에 대해 오히려 공격하고 스스로 자학하는 그런 모순을, 70년대가 아니라 바로 지금 농촌의 모습들과 그 안에 있는 전도된 의식들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