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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9번…농구 대통령으로 불렸던 '상남자' 허재

입력 : 2016-01-31 09:17:00 수정 : 2016-01-28 18: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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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유니폼 넘버, 9번의 주인공…②농구 대통령이라던 한국의 '마이클 조던' 허재

전설의 유니폼 넘버 주인을 소개하면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9번의 허재(1965년 9월 28일생)를 빠뜨리고 말았다. 허재는 '농구 대통령' '농구 9단' '한국의 마이클 조던'으로 불릴만큼 한국 농구가 낳은 불세출의 스타이다.

이런 허재를 9번의 주인공으로 알리지 않았다니 그 죄 값은 두고 두고 갚을 생각이다. 

▲왜 허재 허재하는가…유일무이했던 올라운드 플레이어

허재(188cm)는 사실상 우리나라 농구 사상 첫 올라운드 플레이어이다.

이전까지 키가 크면 움직임과 개인기가, 키가 작으면 골밑 싸움이, 슈터이면 경기전체 조율 능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허재는 슈팅가드이면서 리딩가드부터 골밑 리바운드에 가담하는 파워포워드까지 거의 모든 자리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게임 리딩능력, 경기 흐름을 단숨에 바꾸는 득점력, 팀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는 통솔력과 카리스마를 두루 갖춘 농구스타는 허재 이전에도 이후에도 찾기 힘들다.

▲ 상남자 허재

허재는 거칠게 없는 인물이다. 이른바 상남자로 그를 통해 많은 이들이 묘한 통쾌감을 맛봤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최고스타로 자라왔기에 그 누구한테도 주눅들 필요가 없지만 태생적으로 의리를 중시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따라서 코트 안팎을 거침없이 휘저을 때, 키 큰 선수들을 농락할 때, 다소 불쾌할 정도의 거침없는 말에 기죽어 살았던 사람들이 대리만족을 느꼈다.

허재는 현역시절 "죽어라 근육운동을 하지 않지민 뛸 때 온 몸에 잔 근육이 드러나는 이는 허재 뿐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근육이 잘 발달된 타고난 몸으로 이른바 통뼈이다. 이런 까닭에 코트 안팎에서 이런 저런 충돌을 일으켰다.

플레이스타일도 불같은 성질 그대로였다. 보는 팬들 가슴에 불을 질러 놓을 만큼 멋졌다. 지금까지 농구인들이 '허재 허재'하는 이유이다.

통솔력과 카리스마도 있다. 마치 마이클 조던이 말썽꾸러기 데니스 로드먼을 다독이며 경기를 하게 만들었듯이 허재는 선후배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하면서 경기를 이끌었다.

허재는 스피드, 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마력, 원시적 매력 모두를 느끼게 했다.

▲ 허재의 기록

선수의 존재가치는 역시 기록이 말해준다. 허재의 기록을 짧게 소개한다.

① 프로농구 출범 이전 최고무대였던 농구대잔치 7회 우승

① 농구대잔치 MVP 2회(1992, 1995)

① 농구대잔치 215경기 출장 5352득점

① 농구대잔치 11시즌 통산 경기당 평균 24.89득점

① 프로 농구 8시즌 통산 4524 득점, 1148 리바운드,1572 어시스트, 508 스틸 기록

① 등번호 9번 영구결번(원주 TG삼보=현 원주 동부)

① 1995년 아시아 농구 선수권 MVP

① 프로농구 우승 2회(1997년, 2003년)

① 프로농구 MVP 1회(1998년)

① 86, 94아시안게임 은메달

▲ 용산고-중앙대-기아-프로, 모두 농구판 바꿔놓아

허재는 이른바 용산고 마피아로 불린다. 용산고 시절 팀을 전국최강으로 이끌어 용산고 동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용산고를 졸업한 모 재벌 오너는 사석과 공석을 가리지 않고 "우리 허재"라고 부르며 끔찍히 아꼈다.

허재는 리딩 가드 강동희, 센터 김유택과 더불어 중앙대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중앙대는 실업팀과 맞대결을 펼친 농구대잔치에서 2번 연속 준우승(1985~86년, 1986~87년)을 차지했다. 이 모두 허재를 축으로 하는 이른바 허동택 트리오(허재-강동희-김유택)덕분이었다.

허재는 대학졸업후 1988년 기아자동차에 입단, 허동택+한기범으로 기아 왕조를 형성했다. 그 시절 기아는 성인농구 최고봉 농구대잔치에서 무려 7차례나 우승했다.

▲ 영구결번과 은퇴, 9번을 던 이유

기아에서 절정기를 보낸 허재는 1998년 고교 선배가 구단주인 원주TG로 이적, 2004년 4월 10일 은퇴했다. 원주 TG는 그의 공을 기려 등번호 9번을 영구결번 처리했다.

허재는 "완성을 의미하는 10에서 하나 모자란다는 의미를 가져 9번을 달았다"고 했다.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완성을 위해 부단히,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는 의미이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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