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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재해석… 죽음에 대한 성찰, 거침없는 도발·파격을 도모하다

입력 : 2016-01-21 20:14:23 수정 : 2016-01-21 20: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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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카인’
크나우스고르 ‘나의 투쟁’
최근 국내에 소개된 해외 소설 두 편이 눈길을 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마지막 작품 ‘카인’(해냄)과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한길사)이 그것이다. 두 작품 모두 도발적이지만 그 파격의 내용과 형식은 전혀 ‘다르다. 한 작품은 불온한 상상력으로 충격을 주지만 다른 한 작품은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한 일상만 기록함으로써 파격을 도모한다. 

포르투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
◆ ‘카인’

‘눈먼 자들의 도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문호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1922~2010)가 마지막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구약성경에 기록된 ‘카인’을 위한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의 통렬한 변론에 가깝다. 사라마구 특유의 만연체로 행갈이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빽빽하고 유장하게 변론을 진행하는데, 교조적인 크리스천이라면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경의 죄를 짓는 것 같아 두려울지 모르지만 읽고 판단할 일이다. 여러말 할 것 없이 카인을 위한 핵심적인 변론 한 대목을 들어보자.

“네가 네 아우를 죽였구나. 네, 죽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주이십니다. 주가 내 생명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우를 위해 내 생명이라도 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너를 시험하는 문제였다. 주께서 직접 창조한 것을 왜 시험한단 말입니까. 나는 만물의 주권자인 여호와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존재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좋지만, 저와 내 자유에 관해서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뭐, 죽이는 자유 말이냐. 주에게 내가 아벨을 죽이는 것을 막을 자유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주께서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선고를 하신 것은 주이시고, 나는 그저 처형을 했을 뿐입이다.”

양을 바친 아벨의 제물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곡식을 바친 카인의 제물은 끝내 물리친 여호와. 아벨은 곁에서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선택받은 아들이라고 뻐겼고 카인은 그를 죽였다. 구약의 기록을 사라마구는 철저하게 인간적인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신과 다툰다. 카인은 노아의 방주에까지 올라 그의 식솔들을 모두 죽이고 홀로 살아남는 인간으로 작가는 끌고 나간다. 이 소설이 독신(瀆神)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신과 철저하게 대결하는 만큼 ‘원망스러운’ 그 존재를 역설적으로 강력하게 믿는다는 방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소설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 ‘나의 투쟁’


철저하게 픽션을 배제하고 자신의 기억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기록해나간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다. 할리우드 영화 같은 장르소설, 혹은 묵직한 서사가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소설을 기대한다면 외면해도 좋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48)의 노르웨이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 할 만하다.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는 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모든 일상의 즐거움을 스스로 반납하고 두꺼운 커튼으로 차단한 밀실에서 과거를 반추하며 오로지 쓰다만 갔다. 크나우스고르는 “난 과거에도 그 이전의 과거를 돌이켜보는 데 엄청난 시간을 할애했다”면서 “아마 그 때문에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미치도록 읽었는지도 모른다”고 소설에서 고백하고 있거니와 자신의 기억을 모두 6권, 3622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풀어냈다. 

서사가 없는 건 아니다. 국내에 먼저 소개된 1권을 보면 아버지의 죽음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곁다리 이야기를 시시때때로 삽입하는 형식이다. 일상이 사건이고 어찌보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그의 죽음에 대해 가차없이 냉정하게 묘사하는 대목들에서 보듯 흐트러지지 않는 일관된 태도와 사색은 점차 읽는 이들을 빨아들이는 매력으로 작동한다. 교사로 살았고 시골의 당 대표이기도 했던 아버지가 몰락해 알코올중독자로 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길고 느리게 따라간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의 죽음 앞에서 이미 부조리한 감정을 대변했거니와 이 역시 낯선 태도는 아니지만 느리고 섬세하게 전개하는 21세기의 기억과 사유는 다시 새로운 느낌을 줄 만하다.

노르웨이에서만 50만부 넘게 팔렸고 32개국에 번역돼 상찬을 받았다는 ‘나의 투쟁’은 히틀러의 자서전 제목을 연상시키지만 소설 속에서 할머니가 “사는 건 투쟁”이라고 반복해 말하는 대목에서 크나우스고르의 작의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삶에서 내가 한 가지 배운 교훈은 참고 견디는 것이며, 삶에 대해 질문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그러니 내 속에서 서서히 싹이 트고 자라나는 동경과 온갖 감정은 글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고 소설에서 고백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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