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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웰다잉법, 죽음 완성될 수 있게 서비스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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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1-15 20:41:03 수정 : 2016-01-15 20: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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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통과 이끈 윤영호 서울대 교수 “개인적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200점 만점에 170점입니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에 대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윤영호(51) 교수의 평가다. 이 법안을 이끌어 낸 윤 교수는 “호스피스와 연명의료에 관한 법이 함께 통과됐으니 만점은 200점이고, 그중 모자란 30점은 앞으로 채워나가야 할 점수”라고 말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의 국회통과를 막후에서 이끌어낸 서울대 의과대학 윤영호 교수는 “통과된 법안이 취지에 맞게 시행되고 정착되도록 정부가 2018년까지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원 기자
법안 내용의 핵심은 ‘죽음의 과정에 접어든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통해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잘 죽는 것, 일명 ‘웰다잉법’으로 불린다.

“연명치료를 중단한다고 웰다잉은 아니잖아요. 죽음이 완성될 수 있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동반돼야죠.”

네덜란드를 포함한 외국의 몇몇 국가는 의사가 약을 처방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정도의 안락사까지 가능하다. 연명의료 중단과 동시에 수액과 영양공급도 중단하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웰다잉법’은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 의료행위는 중단하고 영양·수액공급은 계속 하도록 돼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자연스러운 죽음’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죠. 게다가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실행하는 방안이 포함됐으니, 그대로만 된다면 이렇게 발전된 법은 아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을 거예요.”

윤 교수의 말은 감격과 자부심으로 대단했다. 호스피스에 뜻을 품은 지 27년 만에 이뤄낸 일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의대 본과 4학년 때, 그는 자원봉사로 말기 위암 환자를 돌봤다. “환자는 피골이 상접해가면서도 통증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떠나는 순간까지 힘겹게 심폐소생술을 받았어요. 내 가족의 죽음처럼 마음이 아팠죠. 환자들의 품위 있는 죽음을 돕는 의사가 돼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죽음에 관한 책들을 탐독했고, 서울대 철학과 황경식 교수와 함께 토론을 벌이며 의료윤리에 대한 생각을 정립해나갔다. 가정의학과를 선택한 뒤 35세가 되던 2000년 국립암센터 삶의질향상연구과장으로 가면서 본격적으로 호스피스 제도화에 뛰어들었다. 회복 불능 환자에 대한 치료 중단 내용이 담긴 의사윤리지침, 대한의학회의 임종환자 연명치료 중단 지침 등을 만들었고, 복지부를 설득해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완화의료 시행 내용을 담은 암 관리법을 이끌어냈다.

국회에서 발의된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관련 법안을 만드는 데도 참여했다. 18대 국회 때 발의된 법안은 논의도 되지 못하고 그대로 폐기됐다. 19대 때는 달랐다. “반신반의했는데 꽤 많은 의원님들이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했어요. 이번을 넘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었죠.”

그는 막후에서 정부와 종교계, 의료계의 입장 차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회 내 논의가 소극적이었을 때 그는 긴급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해 ‘호스피스 의료 95.5%, 연명의료 중단 80.2% 찬성’ 결과를 내보이며 법안 통과를 압박했다. 최근에는 1만4000여명이 참여한 호스피스 국민본부를 발족하는 데 실무적인 역할을 했다. 몇번의 위기를 넘기며 극적으로 법안이 통과됐다.

“다시 절망스런 상황에 부딪혔을 무렵인 지난해 12월4일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꼭 법안을 통과시켜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갑자기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간의 노력과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진 결과였겠지만, 저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된 지금까지도 비난 여론은 만만치 않다.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가족들이 연명치료 중단을 악용할 수 있다는 등의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법안에 담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오해”라고 단언했다. 어떤 치료로도 회복될 수 없는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생명을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명의료를 거부해 호흡기를 떼고도 200일을 더 살았던 김할머니의 사례가 법안의 반대 근거로 인용되는 데 대해서는 “김할머니는 의료행위를 중단한다고 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임종기 환자가 아니라 식물인간 상태였기 때문에 적절한 예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가족들의 위증 가능 여부에 대해서도 “가족 전원이 말을 맞추더라도 전문의 두 명이 임종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의사의 ‘오판’ 가능성은 절대로 없을까. “그래서 지금 가장 시급한 일 중 하나는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의사가 의학적·윤리적으로 판단하는 훈련입니다. 의료계와 사회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표준화된 지침을 만들고 각 병원이 그에 따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법안은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부터 시행된다. 아직 2년이 남아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폭탄이 곳곳에 있어요. 복지부가 추진단을 만들어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대통령령과 복지부령이 만들어져야 하고 5개년 계획을 세워야 됩니다. 예산도 확보해야죠. 2년도 빠듯합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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