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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에 깃든 삶의 흔적을 들여다보다

입력 : 2016-01-07 20:14:59 수정 : 2016-01-07 20: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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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읽는 세계미술사’ 발간 주먹도끼니 긁개니 이름을 붙이고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라 설명을 해놓아도 그저 볼품없는 돌조각들로 보인다. 인간의 손길을 느낄 수는 있으나 이 정도는 나도 만들겠다 싶어지기도 한다. 선사시대의 유물이란 허투루 보면 종종 이런 감상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돌덩이 하나에 깃든 상상하기 힘든 시간, 제작자의 고뇌과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약 50만년 전에 살았던 베이징원인의 주먹도끼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45만년의 시간이 경과한 뒤에야 얻은 귀한 도구다. ‘슴베찌르개’(창이나 화살 따위에 꽂아서 쓰는 도구)는 어떨까. 날까로운 이빨과 넘치는 힘으로 무장한 사냥감과 돌멩이 하나 쥐고 맞섰던 인간이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생존에 필수인 사냥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혼자 읽는 세계미술사’(조은령·조은정 지음, 다산초당)의 두 저자는 “이 작지만 위대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초기 인류는 수십만년을 기다려야 했다”고 썼다. 구석인들의 ‘삶의 흔적’이 깃든 물건이라는 의미다. 책은 미술품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쁨과 욕망, 고통과 슬픔을 느꼈던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삶의 흔적”이라는 관점에서 보기를 권한다. 그래야 “미술품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고민과 의지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문자가 없어 유물로만 접할 수 있는 선사시대, 세월이 너무 흘러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 있는 고대의 미술품은 당대의 어떤 흔적을 전하고 있을까.

서기전 2만5000년 전 사람들에게 먹을거리와 쉴 장소를 확보하는 건 생존의 문제였다. 주어진 상황만 본다면 그들에게 미술품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미술품을 제작할 수 있는 구성을 지원했고, 미술품을 통해 풍요와 다산을 기원했다. “그만큼 그림과 조각이 전체 집단에서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었다는 뜻”이다. ‘빌렌도르프의 여인상’을 단순히 높이 11㎝의 작은 돌조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은 “여인상을 보면서 느꼈을 경외감은 우리가 미술작품을 보며 느끼는 감흥을 초월한 절박한 감정이었을 것”이라며 “이러한 경외감이야말로 종교적 봉헌물이나 기원을 담는 표지로서 조형예술품이 인류의 삶에 뿌리내리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고대 아시리아의 부조는 어떤 상황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영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왕의 모습을 경직되게 표현했다.
다산초당 제공
서기전 9∼7세기 말까지 메소포타미아지역을 호령했던 아시리아의 부조에는 지배자의 권위와 힘을 강조하기 위한 극적인 대비가 표현되어 있다. 부조 속 인물은 운동감이나 자연스러움이 전혀 없이 뻣뻣하기만 하다. 반면 이들을 향해 달려들다 화살이 꽂힌 채로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인물의 경직성과 사냥감의 생생함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킨 것은 아시리아의 왕 혹은 군사가 특정한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속적인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양한 무기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산 채로 살가죽을 벗긴 적을 처형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지배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중국 청동기에서는 사회를 규율했던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 중국 상나라 때 만들어진 ‘맹호식인유’라는 제기는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괴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괴수의 생생함은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기하학적 문양을 함께 새겨 괴수가 봉인되어 있음을 표현했다. 신비로운 존재인 괴수와 이를 봉인한 문양은 당대 사회에 통용되었던 엄격함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나라 시대에 이르면 제기의 모습은 상나라의 그것과 다르다. 주나라는 왕실과 제후국이 ‘예’를 기반으로 관계를 맺는 국가형태를 만들었다. 제기는 이런 변화를 반영해 기록을 목적으로 한 문자를 빼곡히 적고 화려하고 압도적인 문양은 축소시켰다. 주나라의 청동기는 상나라 시대처럼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종법 질서를 지키는 예문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책은 선사, 고대를 이어 중세, 근대를 이어 현대까지의 미술을 시간 순으로 훑는다. 르네상스시대 미술사학자가 동시대 미술품을 바라보며 남긴 글을 소개하고 ‘형’(形)을 그릴 것인지 ‘의’(意)를 담을 것인지를 놓고 벌인 동양 회화의 논쟁을 설명한다. 현대미술에 이르러서는 오늘날 생활환경 속 시각문화 전반이 내포하고 있는 예술성을 점검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기 위해” 예술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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