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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시대…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입력 : 2015-12-10 22:03:36 수정 : 2015-12-10 22: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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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시련’
국립극단 연극 ‘시련’(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한숨이 난다. 동시에 기시감이 엄습한다. 시대와 지역이 다름에도 무대 위 답답한 상황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그리는 비이성과 광기가 먼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음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연극은 묻는다. 눈 먼 세상에서 평범한 인간이 지켜야 할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미국 대표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53년 발표한 ‘시련’은 1692년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실제로 벌어진 ‘세일럼 마녀재판’을 배경으로 한다.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매카시즘 광풍에 휩싸인 미국 사회를 비판했다. 밀러가 꼬집은 1690년대, 1950년대 미국의 일면은 우리의 모습과도 닮은점이 많다.

세일럼의 10대 소녀들이 어느 날 마을 여성들을 마녀로 모함한다. 악마를 소환해 자신들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종교재판이 열리고 수십명이 마녀로 지목되며 피바람이 분다.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악마의 존재’에 기댄 재판정은 비합리와 광기, 복수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이를 방관하던 존 프락터는 아내가 마녀로 몰리자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이 마을에서 ‘악마’는 이성을 옭아매고 누구든 무자비하게 낙인 찍는 전가의 보도다. 피고가 악마와 결탁했는지 가리는 재판정은 해괴하다. 판사 댄포스는 ‘악마와 손잡은 마녀가 자백할 리 없으니 희생자의 증언이 중요하다’는 논리 아닌 논리를 내세운다. 마녀로 한번 몰리면 합리적 반론은 통하지 않는다. 악마라는 허상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논리가 광기의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은 꼭 세일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무대 위 풍경은 먼 땅 낯선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를 비추는 거울로 확장된다.

판사 댄포스는 이순재와 이호성이 연기한다. 이순재는 안정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불륜을 저질렀지만 고귀한 선택을 하는 ‘평범한 영웅’ 프락터는 ‘나는 나의 아내다’의 지현준이 맡았다. 그간 깨질듯 섬세한 인물을 주로 연기한 정운선은 마녀사냥을 촉발하는 아비게일로 분했다. 극적인 상황을 다루는 걸 감안해도, 가끔 배우들이 발산하는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과한 인상을 주는 점은 아쉽다. 2만∼5만원. 1644-2003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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