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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LG 전설’ 이상훈, 11년 만에 코치로 친정품에

입력 : 2015-12-09 21:06:28 수정 : 2015-12-10 01: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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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칭아카데미 초대원장 겸 코치로 투수 조련 야구팬들은 1990년대 중반 잠실야구장에서 마운드에 우뚝 선 채 사자 갈기 같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공을 던지던 LG 좌완 투수 이상훈을 기억할 것이다. 그가 시속 150㎞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뿌릴 때면 관중은 “이상훈”을 외치며 열광하곤 했다. 1993년 프로야구 LG에 입단한 이상훈은 이듬해 18승으로 다승왕에 오르며 팀을 리그 정상에 올려놨다. 1995년에는 20승을 쌓으며 2년 연속 다승왕을 차지한 이상훈은 아직도 LG 팬들에게 전설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그가 세운 ‘토종 좌완 20승’은 프로야구에서 20년 넘도록 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훈 LG 피칭아카데미 원장이 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11년 만에 팀에 돌아온 소감을 밝히고 있다.
LG 트윈스 제공
2004년 LG를 떠난 ‘야생마’ 이상훈(44)이 우여곡절 끝에 돌고 돌아 선수가 아닌 코치로 11년 만에 친정팀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등번호는 현역 시절 자신이 달던 ‘47’번이다. 지난 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그를 만났다. 전매특허이던 장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단정하게 다듬은 헤어 스타일이었지만,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말과 눈빛은 현역 때 못지않았다.

2004년 LG에서 SK로 트레이드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를 선언한 이상훈은 이후 야인의 길을 걸었다. 야구판을 떠나 음악에 심취한 그는 록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야구와 인연이 그대로 끝날 줄 알았던 이상훈은 2012년 은사인 김성근 감독의 부름에 달려갔다. 당시 고양 원더스 독립야구단을 지휘한 김 감독은 이상훈을 투수 코치로 임명했다. 이상훈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김성근 감독은 일일이 지시하지 않는다. 밑에서 느낀 게 많다”고 회상했다.

이상훈은 고양에서의 경험을 인정받아 지난해 LG의 ‘한 지붕 이웃’ 두산 2군 투수코치로 임명됐다. 그는 두산 2군에서 투수 유망주를 조련했다. 올 시즌 두산이 우승한 배경에는 젊은 투수를 길러낸 이상훈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시즌을 잘 마무리한 채 쉬고 있던 지난달 그는 갑작스레 LG 측의 제안을 받았다. 양 구단 고위급 합의는 이미 끝났고 이상훈의 결정만 남았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는 옛 영광을 떠올리며 LG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오랜만에 LG에 왔다고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현역 시절 가장 오래 유니폼을 입었던 팀이다. LG의 녹을 많이 먹었고 다시 돌아와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LG팬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끊임없이 이상훈 영입을 요청했고, 결과적으로 구단이 팬들의 뜻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는 “아직도 잠실구장에 올 때 제 유니폼을 입고 있는 분들을 보거나 사진이나 그림을 들고 있는 팬들을 볼 때면 감개무량하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LG로 돌아온 그의 공식직함은 피칭아카데미 초대 원장이다. 이번에 만들어질 피칭아카데미는 투수 유망주를 선별해 개인별 목표 수준과 기간을 설정한 뒤 일대일로 집중 지도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상훈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로 지명된 김대현과 2차 1순위로 입단한 유재유 등 유망주들을 집중 지도할 계획이다. 그는 “외국 생활을 오래하면서 느낀 것은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렸다”며 특히 선수 개개인의 정신력을 강조했다.

이상훈이 현역 시절 잠실구장에서 갈깃머리를 휘날리며 공을 던지는 모습.
세계일보 DB
이상훈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자유계약(FA)선수 부분이 가장 달라졌다고 꼽았다. 2000년에 도입된 FA제도는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최근 들어 100억원에 달하는 ‘대박’ 사례가 다수 일어나고 있다. 그는 “너무 FA만 보고 가는 것도 있다. 팀에 악영향을 끼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상훈은 1998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를 거쳐 2000년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처음 갔을 때 사막 한가운데 혼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경기에 투입되면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입장이어서 부담이 컸다”면서 “문화와 환경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다르다. 쉽지 않겠지만 한국에서 했던 이 마음가짐과 실력을 그대로 해야 한다. 그 팀에 있던 기존 선수처럼 자연스럽게 뛰면 된다. 그 점에서 류현진이 가장 무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꿈이나 목표를 따로 세우진 않는다. 우승을 거둘 때도, 다승왕에 오를 때도 시즌 전에 목표를 세우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살고 싶다. 지금까지 인생이 그랬다. 대신 하루하루 내 모든 것을 소진하며 살 것”이라면서 “못하면 잘리면 된다. 그만큼 후회 없이 할 생각이다. 순수한 열정을 갖고 LG에서 내 모든 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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