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욕망을 거세해야만 살 수있는 20代의 허전한 삶 들여다보기

입력 : 2015-12-03 20:08:03 수정 : 2015-12-03 20:08:0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신예작가 김엄지, 첫 소설 ‘미래를…’·장편 ‘주말…’ 잇따라 펴내
2010년 ‘문학과 사회’ 신인상으로 등단한 신예 작가 김엄지(27·사진)가 첫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문학과지성사)와 첫 장편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민음사)를 연달아 펴냈다.

20대 여성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김엄지 작품이 20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그 일단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효하다. 그네의 작품에서 흥미진진한 서사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무채색 진술이 이어진다.

미처 책으로도 묶이지 않은 김엄지의 작품세계를 분석해 올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김엄지 세대의 신예 평론가 박혜진은 “김엄지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게 많아진다”면서 “김엄지가 인물을 드러내지 않는 보다 내재적인 방법은 주인공에게서 욕망을 빼앗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소설집 표제작을 보자. ‘그’는 산으로 간다. 산으로 가기 위해 구매하는 물품 목록을 나열한다. 산으로 갔다가 숙소를 못 찾아 헤맨 이야기, 계곡에서 다이빙하는 이야기, 휴대폰 배터리가 떨어질 위기에 처한 이야기, 헤어진 여친과 나누는 건조한 대화, 미래에 대한 혼이 실리지 않은 걱정 따위가 이 소설의 전부다.

“미래. 미래. 미래. 미래. 그는 미래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되새기면서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의 종아리에 가늘고 거친 풀이 스쳤다. 그는 쓰라렸지만 아무렇지 않게 걸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서 걸었다. 그의 미래에는 눅눅한 이불과 밀린 세금이 있었다.”

이 소설집에서 상대적으로 서사가 강한 작품은 ‘삼뻑의 즐거움’이다. 화투에 중독된 영철에게는 ‘한 번 싸면 또 싸는’ 투뻑이 징크스였다. 눈앞에 배부른 순이가 나타났을 때 영철은 어금니를 꽉 물고 퍼부었다. “그럼 넌 내가 싸는 동안 뭘 했는데? 못 싸게 막든지.” 순이가 던져주고 간 아이가 ‘팔광’이다. 그 아들 녀석이 달리기를 잘해 받아온 트로피를 담보로 화투판에 다녀오다 넘어져 피를 흘리는 영철이 이야기는 21세기판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해설자 백지은은 말한다. 믿을 수 없는 부모 세대다.

장편은 “E는 생일 기념으로 스케일링을 하기로 결심했다. 결심하고 나자 곧 뿌듯해졌다”에서 시작해 “출근길에 E는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결심하고 나자 곧 뿌듯해졌다”로 끝나는 시 같은 소설이다. 무엇이 20대 여성 작가의 내면을 이리 허전하게 만들었을까. 욕망을 거세해야만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세대의 징후인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