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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간에 멈춰버린 삶, 작은 울림에 싹트는 변화
갈아 끼우던 전구가 펑하니 나가버리고, 뭔가를 적으려던 연필심은 뚝 부러진다. 이런 재수 없는 날이 있다. 오래전 사랑하는 여인이 떠난 후 세상, 가족과 담을 쌓은 채 지내는 나이 든 열쇠 수리공 맹글혼(알 파치노·사진)에게 오늘이 그런 날이다. 그에게 아침 알람 소리는 유난히 괴롭다.

고집불통인 성격 탓에 하나뿐인 아들에게도 아버지로서 인정 받지 못하는 그는 클라라와 함께했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만을 추억하며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갈 곳을 잃은 편지는 매번 반송되어 오고, 그는 멈춰버린 시간 속에 갇힌 채 살아간다.

다행히 은행에서 일하는 사랑스러운 여자 던(홀리 헌터)의 도움으로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늦었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들과 단둘이 점심식사를 하고, 손녀와 공원 데이트를 하는 등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결국 상처를 주고 마는 맹글혼의 서툰 감정 표현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함께 샤워를 하자고 제안하는 던 앞에서 추억 속의 클라라 자랑을 늘어놓는 식이다.

영화 ‘맹글혼’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 시대 평범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맹글혼의 모습은, 가족을 위해 일했지만 결국 쓸쓸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또 다른 마법 같은 변화를 꿈꾸길 요구한다. 마음에 두지만 말고 표현하라고 한다. 사랑은 고백하는 것이다.

맹글혼은 잠긴 자동차 문을 열 듯 결국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연다. 다시 시작한다. 집안을 정리하고 마당도 치운다. 삶을 바꾸기 시작한다. 알 파치노의 깊은 주름살들은 그 자체로 명연기를 선사한다.

김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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