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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자연의 당당한 민낯, ‘설악의 雪景’ 눈이 시리네

입력 : 2015-11-25 06:00:00 수정 : 2015-11-2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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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14일까지 전시 여는 김종학 화백
‘설악산 화가’ 김종학(79) 화백은 자신의 겨울풍경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 외국 미술관들도 한국화적 요소가 있어 그의 겨울풍경 작품을 선호한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그의 울긋불긋한 설악의 야생화 풍경만을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전시장에서 그의 겨울풍경은 보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요즘 그는 설악의 설경에 심취돼 있다. 눈을 가진 자는 분명 그의 겨울설악을 좋아할 것이라 했다. 그는 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절기라고 했다. 화장하지 않은 민낯이며 숭고한 자연의 골격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설경이 가진 침묵은 엄숙하기까지 하다. 여든을 앞둔 작가의 필력은 여전히 눈 위를 걸어가는 듯 사뿐하다. 설악의 바위산 장엄미는 직접 모래를 안료와 섞어 두꺼운 마티에르로 표현했다. 힘찬 선들은 설악의 골격미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가의 설경이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이유다. 보여진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뼈대만 남기고 생략했다. 비움이 채움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여백의 미학이다.

“죽어가는 풀잎도, 눈이 덮여 기울어진 모습도, 돌도, 냇가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그렇게 설경은 작가의 세월에 녹아들고 있다. 화려한 색채도 꽃이 없어도 괜찮다. 오로지 눈내림 속의 고요가 두 눈 속으로 달려들 뿐이다.

“겨울은 모든 걸 다 떨쳐내고 고요하고 엄숙한 계절이다. 자연의 뼈대를 그대로 드러내는 겨울 풍경에서 골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민낯 같은 당당함이 엿보인다.” 사실 그는 설경을 설악에 기어든 40대 이후부터 줄곧 그렸다.

눈 내린 풍경은 고요하고 적막해서 좋다. 살짝 녹은 눈과 어우러진 자연의 모습은 그것대로 또 다른 매력이다. 눈이 덮여 기울어진 모습을 보는 것도 지루할 틈이 없다고 했던 풍경 작품이다.
조현화랑 제공
“난 사계를 모두 그리는 작가다. 그런데 꽃의 작가로 인기가 있다보니 겨울 그림은 늘 그려왔지만 그동안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안목이 뛰어난 사람이 겨울 그림의 진수를 안다.” 그는 기운생동을 가장 중시한다.그림을 그리기 전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 숨을 고르고 고민하지만 막상 붓을 들기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작업을 한다. 이렇게 해야 형용하고자 하는 대상을 보다 실감 나게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많은 색채가 사라진다. 봄, 여름, 가을 그림의 경우 많은 색채를 사용하기 때문에 색채에 대한 고민을 많이해 완성까지 오래 걸리는 반면에 겨울은 흑백의 단순한 색상을 사용해 선(線)을 주된 요소로 등장시키기 때문에 빠르게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면 하루 종일 그린 그림보다 다섯 시간 동안 집중해서 그려낸 그림이 훨씬 실감 나게 다가온다.”

그는 나이프로 거칠고 투박하게 물감을 올리거나 불린 종이와 모래를 안료와 섞어 보다 강한 마티에르를 표현한다. 재료의 투박하고 순수한 맛이 바위의 장엄미와 겨울의 엄숙미를 표현하는 데 제격이라는 것이다.

설악의 품에 안겨 그는 무엇을 얻었을까.

“자연의 모든 부분이 내 영감의 원천이다. 피카소는 ‘화가는 여자이고, 자연은 남자’라고 했다. 자연이 생명을 주어야 화가는 새 생명인 작품을 만든다고 했다. 자연은 굳이 내가 가서 말을 걸지 않아도 항상 열려 있다. 그런 자연에 안겨 많이 보는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같은 계절의 같은 장소에서 만난 자연일지라도 지금과 나중의 모습이 또 다르다. 마흔에 보았던 설악과 여든을 앞둔 지금의 설악은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이 모두 다르게 생겼듯이 같은 종의 꽃도 열심히 쳐다보면 다 다르다. 그래서 자연의 품에 안겨 가까이에서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는 많은 양의 스케치로도 유명하다.

“속도감 있게 그리기 위해서는 준비과정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려는 대상을 많이 바라보아야 하고, 사진도 찍고 스케치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러고는 자연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내가 만난 자연의 핵심을 뽑아서 그린다. 그 순간의 감성을 잡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스케치가 캔버스 작업보다 재밌는 것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캔버스 작업을 할때는 스케치를 참고할 뿐 그대로 따라 하진 않는다. 스케치는 스케치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순간의 자유로움을 즐긴다. 김종학이라는 화가의 눈을 통해 자연은 그렇게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을 그린 나의 그림을 추상적인 구상이라고 한다.”

이 시대 젊은 작가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붓을 놓지 말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항상 그려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중에 드는 많은 생각과 기쁨, 슬픔, 고통 또한 잘 견뎌야 한다. 여전히 나도 작품 앞에서 자신 없을 때가 있다. 오늘은 자신 있다가도 다음 날 다시 캔버스 앞에서면 두렵기도하다. 이것을 즐겨야 한다. 작가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기 보다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 해서 뭐 하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에도 ‘재미있어서 한다’라고 하면 된다. 무용(無用) 속에 진정한 즐거움이 있다.”

부산 조현화랑에서 12월10일부터 내년 2월14일까지 김종학 ‘설경’전이 열린다. 2011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이후 겨울풍경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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