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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동아시아 문화의 공통분모 ‘젓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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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1-14 06:00:00 수정 : 2015-11-14 11: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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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함께한 ‘생명의 동반자’… 배려와 나눔을 집다
청주 백제유물전시관에서 진행되는 젓가락 특별전에서는 1m짜리 젓가락, 일명 ‘천국과 지옥 젓가락’을 만날 수 있다. 왜 천국과 지옥일까. 젓가락 문화권의 전래동화 이야기다. 천국과 지옥에서는 똑같이 1m짜리 길고 굵은 젓가락을 사용한다. 하지만 식사 풍경은 전혀 다르다. 지옥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고 자기만 먹으려다 긴 젓가락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반면 천국에서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먹여주며 서로 돕는다. ‘천국과 지옥 젓가락’은 젓가락에 담긴 배려와 나눔, 협력의 가치를 상징한다.

 ◆젓가락 사용은 두뇌에도 영향

 세계인의 먹는 방식을 보면 손을 사용하는 비율이 40%, 포크·나이프·스푼을 쓰는 비율은 30%다. 나머지 30%는 젓가락을 사용한다. 하지만 젓가락은 손이나 포크·나이프·스푼처럼 단순히 먹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포크는 딱히 기술이 없어도 쉽게 쓸 수 있지만 젓가락질은 배워야만 제대로 할 수 있다. 젓가락을 사용하려면 음식을 먹기 좋은 크기로 요리해야 하지만, 포크·나이프는 음식을 덩어리째 주어 잘라먹도록 한다. 젓가락 문화는 배려, 음식에 대한 책임, 생명의 가치 등 정신과 문화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1일 청주 국민생활관에서 동아시아문화도시 청주조직위 사무국 주최로 열린 ‘젓가락신동 선발대회’에 출전한 초등학생들이 젓가락으로 접시에 담긴 콩을 집어 유리병에 옮겨 담고 있다.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나이프는 음식을 멋잇감처럼 절단하지만, 젓가락은 음식을 아이처럼 부드럽게 어른다”며 포크와 나이프의 폭력성과 젓가락의 포용성을 비교하기도 했다.

 젓가락은 손의 연장이다. 포크는 찍기 동작만 가능하지만 젓가락으로는 집기, 찟기, 뜨기, 모으기, 감싸기, 발라내기 등 여러가지가 가능하다. 두 개의 막대기로 여러가지 동작을 하다 보니 두뇌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손에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206개의 뼈 중 4분의 1이 모여 있는데, 젓가락을 사용하면 손가락에 있는 30여개의 관절과 60여개의 근육이 움직인다.

 2012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과 영남대병원이 성인 남녀 20명을 대상으로 쇠젓가락, 나무젓가락, 포크를 사용해 콩을 2초에 한 개씩 옮기는 실험을 한 결과, 쇠젓가락을 사용할 때 두뇌활동이 가장 활발했고 이어 나무젓가락, 포크 순으로 나타났다. 쇠젓가락의 경우 시각적 집중력에 관여하는 뇌 앞부분이 매우 강하게 활성화했다. 나무젓가락은 포크에 비해 24%, 쇠젓가락은 포크에 비해 2배 정도 더 활성화했다. 나무젓가락은 마찰력이 커 작은 물체를 집는 데 쇠젓가락만큼의 정교한 손기술과 두뇌활동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래혁 한국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매일 생활 속에서 손을 정밀하게 쓰는 상황이 반복되면 뇌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젓가락 사용 자체가 두뇌 발달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며 “어릴 적부터 뇌를 잘 계발할 수 있는 두뇌친화적 환경은 선조들이 물려준 훌륭한 문화적 자산”이라고 말했다.

 ◆한·중·일 젓가락 문화 차이

젓가락은 1000년 이상 된 물건 중 거의 형태가 바뀌지 않고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생활문화도구다. 한·중·일이 2000년 이상 한자와 음식, 언어보다도 가깝게 공유한 문화이면서도 각기 다른 특성이 한눈에 비교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음식은 기름지고 뜨거우며 뼈를 발라낼 일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둘러앉아 함께 먹는 두레반이 기본이다. 넓은 식탁을 사용하기 때문에 음식과 사람의 거리가 멀어 3국 중 젓가락이 가장 길다. 미끄러지지 않고 뜨거운 김에 데지 않도록 길고 퉁퉁하며 끝이 뭉툭하다. 젓가락 역사가 오래된 만큼 대나무, 금속, 상아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으며 최근에는 나무와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일본 식문화는 좌식으로 1인상을 기본으로 한다. 생선가시를 발라먹을 일이 많고 밥그릇을 들고 먹기 때문에 젓가락이 짧고 끝이 뾰족하다. 다습한 섬나라인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녹슬 우려가 없는 나무젓가락을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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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이다. 1인상을 기본으로 하는 좌식문화를 갖고 있으며 고기, 전 등의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끝이 납작하며 무게감 있는 금속제 젓가락을 사용한다. 국물을 많이 먹는 탕문화의 발달로 숟가락을 젓가락과 한쌍으로 사용한다. 금속제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구분할 수 있는 특성이 있으며 보존성이 높다. 이 때문에 3국 중 가장 많은 젓가락 유물이 남아 있다.
 
‘젓가락 정신’ 잘 이어나가야

너무나 가까워 미처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우리의 전통문화. 이러한 젓가락 문화에 위기가 오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 중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는 비율은 25%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과 일본 60%에 한참 못 미친다. 학교나 가정에서는 체계적인 젓가락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젓가락 학술서 하나 없고, 아이들은 소풍 도시락에 젓가락 대신 포크를 싸간다.


 최근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젓가락 전쟁이 시작됐다. 중국, 일본, 홍콩 등지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젓가락 문화를 등재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청주 젓가락페스티벌을 개최한 동아시아문화도시사무국 변광섭 국장은 “중국은 사료와 연구자료를 꾸준히 모아 왔고, 일본은 젓가락 문화와 젓가락 마을 등이 활성화돼 있다. 우리만 손놓고 있었다. 젓가락페스티벌을 계기로 한·중·일 공동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우리가 중·일을 따라가려면 까마득하다”고 말했다.

 젓가락페스티벌을 주도한 이어령 동아시아문화도시 청주조직위 명예위원장은 “젓가락은 한·중·일의 공통된 문화원형이다. 종주국을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어느 나라가 더 젓가락 문화를 잘 보존하고 젓가락 정신을 잘 알고 이어가느냐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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