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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따라 ‘묻지마 투자’ … 주식 폭락해 전 재산 날리기도

관련이슈 금융취약층이 위험하다

입력 : 2015-11-08 19:01:35 수정 : 2015-11-09 14: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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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취약층이 위험하다] ‘투자 함정’에 고소득전문직도 낭패
대기업에 다니는 강모(37)씨는 월급이 600만원 정도로 꽤 많은 편이지만 매월 생활비가 모자라 허덕인다. 보험료로 매달 250만원이 나가고, 초등학생 두 자녀 사교육비를 포함한 생활비가 600만원에 달한다.

그는 “친한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옮길 때마다 새 상품 가입을 권해 들어주다보니 보장성, 저축성 보험 다 합쳐 16개나 된다”면서 “중간에 갈아탄 것들은 얼마나 손실이 났는지도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가 손실을 보는 동안 보험상품을 판 보험설계사가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렸을지, 강씨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강씨는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금융투자 상품에 1억여원을 분산투자했지만 브라질국채 -60%, 펀드 -50%, 상장지수펀드(ETF) -30% 등으로 손실이 너무 커서 발을 빼지도 못하고 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아예 들여다보기도 싫어졌다”며 고개를 저었다. 

◆고소득·전문직도 속수무책

강씨처럼 고학력, 고소득자도 재무관리나 투자에 실패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재무상담이나 피해구제를 위해 금융, 재무상담소를 찾아오는 소비자 중에는 안정적인 직장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사단법인 희망살림의 김미선 본부장은 “금융상품 가입 경위를 물어보면 대부분 시댁 식구, 교회, 군대선임 등 지인이 권해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한다”며 “금융상품이 복잡하고 어려우니 그냥 친구나 옆사람 추천 듣고 하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선후배, 친구, 친척 등 친분관계를 무기로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한국 특유의 ‘지인 마케팅’, ‘정(情) 마케팅’에 약한 것도 재무관리 실패의 주범으로 꼽힌다.

스스로 과신해서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차모(32)씨는 2년 전 종목형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봤다. 발행시점 대비 해당 종목의 주가가 30∼40% 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원금 손실 없이 8%의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하니 매력적이라고 여겼다. 차씨는 “그동안 주식 등에 꾸준히 투자했고 ELS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데다, 국내 대기업에 투자했기 때문에 주가가 폭락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금융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구체적 상환계획 없이 돈을 빌렸다가 곤경에 처하는 금융취약층이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거리에 붙어 있는 대출 광고.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는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전 재산 8000만원을 모두 쏟아부었다. 그러나 얼마 후 해당 회사 주가는 폭락했고 원금은 반 토막 났다. 결국 차씨는 결혼식까지 연기해야 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 7∼8월 은행, 저축은행, 보험사, 대부업체 등 금융사 고객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금융지식이 가장 낮은 그룹이 가장 공격적인 투자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지식 5점 만점 가운데 최하위그룹인 0점그룹의 주식·펀드·파생·채권 등 투자상품 보유 비중이 31.3%로 최상위인 5점그룹(27.7%) 보다 높았다. 반면 가장 안전한 상품인 예금의 비중은 0점 그룹이 30.0%로 가장 낮았다.

조사 결과 금융지식이 없으면서도 있다고 스스로 과신하는 소비자그룹이 전체의 12%에 달했다. 김자봉 박사는 “이들 그룹은 금융지식이 있으면서 자기확신도 있는 그룹에 비해 금융사기 위험에 3배 이상 더 노출되고, 자살 및 도피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더 높다”고 분석했다.

◆열심히 파는 금융상품의 공통점


저학력, 저소득층이 대부업체나 캐피털사의 주요 타깃이라면,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은 투자, 자산운용사의 집중 공략 대상이다.

희망살림의 김 본부장은 “의사나 대기업 직원, 은행원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에 대한 금융사들의 마케팅이나 접근방식은 일반인과 다르다”며 “‘이만 한 수입과 능력으로 무슨 예·적금이냐, 더 수익률 높은 상품에 투자해라’라며 허세나 지적 교만을 교묘히 이용해 어렵고 복잡한 금융상품을 권한다”고 설명했다. 2011년 한창 붐을 이뤘다가 최근 수익률이 반 토막 나다시피 한 브라질국채도 최소 가입금액이 3000만원 이상으로 대부분 고액자산가들이 증권사 추천으로 투자했다.

전문가들은 지인이든, 금융사든 적극 권유하는 상품에는 이유가 있다고 지적한다. 송승용 희망재무설계 이사는 “상담사례 중 보험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은데 대부분 수수료가 비싼 종신, 변액 보험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라며 “펀드도 국내펀드보다는 해외펀드, ELS, 브라질국채 등 수수료가 비싼 상품들을 더 많이 권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사들이 열을 올리며 팔 때,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인기 있을 때는 이미 가격이 올라있을 때이므로 한번 더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투자 상품에 대한 소비자 보호조치는 미흡하다. 신상희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연구원은 “자본시장법상 금융사들은 투자자 성향에 비해 위험한 상품을 권유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고객으로 하여금 ‘내 판단 하에 투자한다’는 문구에 서명하게 만들어 면책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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