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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통이면 수천만원… 고금리에 허덕이다 벼랑끝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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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1-08 19:00:36 수정 : 2015-11-09 14: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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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취약층이 위험하다] (1회) 빚 수렁에 빠진 사람들
“빚의 굴레에서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기분이에요.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가 없어요.”

처음부터 큰 돈을 빌린 것은 아니었다. 곧 갚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빚이 그렇게 무섭게 불어날 줄 몰랐다. 세계일보가 심층인터뷰한 금융취약자들은 저마다 다른 사정으로 돈을 빌렸지만, 그들이 벼랑 끝으로 몰린 과정은 비슷했다. 그들은 “돈 빌려주겠다는 곳은 많았지만, 돈을 못 갚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직장인 정진우(39·가명)씨는 10년 넘게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가 처음 대출을 받게 된 것은 대학생이던 2002년이었다. 사업을 해보고 싶었던 정씨는 고향에서 음식점을 열기 위해 휴학을 하고 저축은행에서 1500만원, 카드사에서 3000만원을 각각 빌렸다. 정씨는 “장사가 잘 될 때는 통장에 돈이 있으니까 ‘10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하니 돈 빌리라’는 우편물이 자주 왔었다”며 “은행이나 카드사 가면 쉽게 빌려주니까 대출을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일 월드컵 붐을 타고 잘 되던 장사가 갑자기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씨는 이 카드에서 돈을 뽑아 저 카드의 대금을 결제하는 ‘카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카드 한도가 넉넉해 문제가 없었지만, 2002∼2003년 ‘카드 대란’이 터지면서 상황이 확 달라졌다. 카드사들은 갑자기 카드 한도를 줄였고, 정씨는 더 이상 카드 돌려막기를 할 수 없게 됐다. 원금은 한 푼도 못 갚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어느새 빚이 1억5000여만원이 됐다.

빚 독촉에 견디다 못한 정씨는 대학 졸업도 못하고 쫓기듯 고향을 떠났다. 수입이 있는 것이 알려지면 압류가 들어오기 때문에 4대 보험 혜택도 못 받고 일을 하고 있다. 4년 전에 결혼했지만 부인까지 ‘신용불량자’의 낙인이 찍힐까봐 혼인신고는커녕 아이를 가질 생각도 못하고 있다. 정씨는 “지금은 인터넷 찾아보면 신용관리 하는 법 등이 나오는데 그때는 알아볼 곳도 없었다”며 “카드 한도도 잘 나오니 충분히 빚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수입이 줄어드니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졌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카드 발급이나 대출에 대해 문의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을 보면 정씨는 ‘말리고 싶다’고 했다. 정씨는 “예전에 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당장은 쉽고 편하게 돈을 쓸 수 있지만 못 갚으면 나처럼 10∼20년 고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용 지키려다 빚더미에”


김민기(36·가명)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인쇄 업체에서 10여년을 일하다 2010년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친구와 서울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열었다. 사업자금으로 보험약관대출 2000만원과 모아놓은 돈 4000여만원을 털어넣었다.

장사는 잘 되는 듯했지만 수입은 넉넉지 않았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200만원에 불과했다. 방세 등 고정비용 지출만 한 달에 120만∼130만원에 달해 생활비가 부족했다. 카드사에서 대출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다. 이후에도 수입은 늘지 않았고, 카드 빚만 쌓여 갔다. 연체를 피하기 위해 카드 돌려막기를 했다. 김씨는 “걱정을 하긴 했는데 막연하게 나중에 다른 데서 돈을 빌릴 수 있겠지 했다”며 “처음 3개월 정도는 괜찮았는데 그 이후부터 빚이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카드대출로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하는 날이 반복되면서 결국 포장마차를 1년 만에 정리했다. 그 사이 빚은 4000여만원으로 불어났고 김씨는 채무조정 신청을 고민하고 있다. 김씨는 “신용을 지키려고 돌려막기를 했는데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고급 지식은 아니어도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빚더미에 앉고 나서야 내가 금융을 몰랐다”고 말했다.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채무상환이 힘들면 부채구조와 지출방식을 조정하고 구제제도를 이용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채무자들은 새로운 고금리 부채로 다른 부채를 메꾸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 연구위원은 “사회 구성원들이 금융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금융이 활성화되면서 신용관리나 채무관리에 대한 지식 없이 돈을 빌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 sht9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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