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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 싸게 사자"… 한정 없는 욕망

입력 : 2015-11-03 18:34:56 수정 : 2015-11-04 02: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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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망' 매장 앞 밤샘 노숙행렬 깔끔하게 차려입고 외출했는데, 길거리에서 똑같은 옷을 입은 이를 만나면 왠지 언짢은 것이 인지상정일 게다. 남과 다른 패션에서 정체성을 찾는 명품족이라면 빈정이 상할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희소성이 매력인 ‘한정판’은 인간의 원초적인 소유욕을 자극한다.

한정판을 손에 넣었을 때 맛볼 수 있는 뿌듯함과 우월감에 취해 쌀쌀한 날씨에도 며칠째 노숙을 자처하는 이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 명동과 압구정동 등에 등장했다.

3일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 명동 매장 앞에서 수십명의 고객들이 캠핑 의자와 담요 등을 구비한 채 5일 오전 8시부터 명동점 등 4개 매장에서 판매되는 한정판 상품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원 기자
3일 스웨덴의 제조·유통일괄형 패션 브랜드인 H&M에 따르면 이 회사의 압구정동 매장 앞에는 지난달 30일부터 수십명이 밤을 새우며 줄을 서 있다. 이들은 HM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발망과 협업(컬래버레이션)해 만든 한정판 옷을 사려고 패딩과 무릎담요 등으로 무장한 채 출시일인 5일 오전 매장문이 활짝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HM은 앞서 2010년부터 해마다 한두 번씩 세계적인 디자이너 등과 함께 만든 콜라보 제품을 한정판으로 내놓는데, 보통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수십만원대의 합리적인 가격대에 구입할 수 있어 ‘옷 좀 입을 줄 안다’는 이들은 손꼽아 출시를 학수고대한다.

H&M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예년에는 보통 출시 이틀 전부터 대기 줄이 생겼는데, 올해는 지난 주말부터 명동 눈스퀘어점 앞에 나타났다”며 “이번에는 30세의 나이로 발망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수석 디자이너)에 오른 올리비아 루스탱과 협업했다는 소식에 입소문을 더 탄 것 같다”고 전했다. 이번에 출시되는 협업 제품은 자카드 실크블라우스가 11만9000원, 인조 ‘퍼레더’ 재킷이 15만9000원, 컬러블록 드레스가 9만9000원으로 책정되는 등 재킷과 바지, 셔츠 대부분이 10만원대이다. 프린트티셔츠와 클러치(손가방)는 5만원 안팎이다. 이 관계자는 “명동 매장은 물론이고 이번 협업상품이 출시되는 압구정점과 서울 롯데 잠실점, 부산 신세계센텀시티점에도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노숙도 마다하지 않는 열성 고객이 밤이면 캠핑 의자나 텐트에서 며칠째 잠을 청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예년에는 출시일에 맞춰 월차를 내고 전날 퇴근하자마자 달려온 직장인들도 여럿 있었는데, 올해는 이런 전략도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H&M 측은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일주일 전 비상회의를 열어 만반의 대비를 갖췄다고 한다. 청원경찰을 현장에 대기시키고, 언제든지 구급차를 부를 수 있도록 병원과의 비상 연락망도 마련했다. 3일 열 예정이었던 주요고객(VIP) 대상 프리쇼핑 행사도 취소하고, 고객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품별 1장씩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힘들게 한정판을 손에 넣은 뒤 며칠간 입어 기분을 내고는 인터넷 중고시장에 구매가보다 비싸게 내다 파는 ‘합리적인 소비자’도 있다”고 귀띔했다.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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