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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정·재계 거물들, 전직 대통령도 거쳐간 영욕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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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31 06:00:00 수정 : 2015-10-3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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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머신 비리 연루 박철언 前 장관… “내가 조성한 법조타운서 구속돼”
정태수 “법원 자리 우리 종친 땅”… 한보비리로 그 자리서 재판·구속… 노태우·전두환 등 前 대통령도 악연
“원심을 파기합니다.”

1995년 10월17일 오후 1시50분. 서울 서소문 대법원 대법정의 판사석 중앙에 앉은 윤관 대법원장이 담담한 표정으로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읽었다. 이날 따라 특별히 언론에 공개된 법정에는 사진기자 수십명이 들어와 쉴 새 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선고를 끝낸 윤 대법원장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나직하게 말했다. “자, 마칩시다.”

대한민국 법조계의 서소문시대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취임한 1948년 이후 47년 만이고, 일제강점기 당시 이곳에 법원·검찰청이 들어선 1928년부터 계산하면 67년 만의 일이다. 마지막 선고를 끝낸 대법원이 서소문을 떠나 서초동 신청사로 옮기면서 ‘서초동 법조타운 시대’가 활짝 열렸다.

◆1995년 대법원 입주로 ‘서초동 시대’ 완성

한강 이남 서리풀만 무성했던 서초동이 새 법조타운 부지로 정해진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서소문 법원 청사가 비좁아 어려움을 겪던 대법원은 강남 땅에 눈독을 들였다. 역시 일제강점기에 지은 낡은 청사 탓에 고심하던 서울시도 이전을 결심하고 부지를 찾던 중이었다. 두 기관의 이해가 일치해 서울시는 1977년 5월18일 10만9000㎡(약 3만3000평)의 서초동 땅을 ‘공용청사 부지’로 지정해 “공공건물만 지을 수 있다”고 고시했다.

가장 먼저 사법연수원이 1982년 서초동으로 옮겼다. 매년 100여명을 뽑던 사법시험 정원이 1981년부터 300명으로 늘면서 서소문 법원 청사 내의 연수원 공간으로는 감당이 안 됐다. 다음은 서울고법과 서울민·형사지법(현 서울중앙지법) 차례였다. 업무상 법원과 밀접한 관계인 서울고검과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도 이전 대열에 합류했다.

대법원과 대검찰청은 사정이 조금 복잡했다. 지금의 대법원, 대검이 있는 자리는 원래 서울시가 신청사 부지로 ‘찜’을 해둔 곳이었다. 오랜 협상 끝에 서울시가 한 발 물러났다. 대법원, 대검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되 대법원, 대검이 그때까지 쓰던 서소문 청사 부지는 서울시에 넘기는 것으로 합의했다. 대검은 1995년 8월, 대법원은 그해 12월 각각 서초동 신청사 준공기념식을 열었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서초동은 검찰보다는 법원과 더 ‘궁합’이 잘 맞은 듯하다. 서소문 시절 대법원은 정치적 격랑 속에서 대법원장이 임기 도중 물러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서초동 이전 후로는 윤관, 최종영,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차례로 6년 임기를 채웠다. 반면 대검은 서초동 이전 후 대부분의 검찰총장이 임기 도중 낙마했고, 심지어 전직 총장이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입장에서 보면 서초동은 터가 안 좋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도 서초동과의 ‘악연’ 못 피해

변호사 사무실이 빼곡한 서초동의 ‘정곡빌딩’은 해주 정씨 종친회 소유로 알려져 있다. 종친회장을 지낸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의 법원 자리를 비롯한 서초동 일대가 예전에 우리 종친회 땅이었고, 그래서 사회 환원도 많이 했다”고 자랑했다. 서초동 땅 대부분을 신설 법조타운에 내놓았다는 정 전 회장은 훗날 ‘한보 비리’로 검찰에 구속돼 법원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됐다. 

‘6공 황태자’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장관도 서초동과 얄궂은 인연을 맺었다. 5공 초기 청와대 법률비서관이던 박 전 장관은 법원·검찰의 서초동 신청사 건설에 관심을 쏟으며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김영삼정부가 출범한 1993년 그는 ‘슬롯머신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는다. 박 전 장관은 2005년 펴낸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서 “내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 애써 옮겨 놓은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밤샘 조사를 받고 구속됐다”며 “인생은 참 아이로니컬한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한탄했다.

서초동과의 ‘악연’은 역대 최고 권력자들도 비켜가지 못했다. 서울지검이 1989년 서초동으로 이전하자마자 맞아들인 가장 중요한 ‘손님’은 당시 평민당 총재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서경환 의원 밀입북 사건으로 공안부 조사를 받고 기소됐다. 대검이 1995년 서초동으로 옮긴 직후 맞아들인 최고 ‘거물’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거액의 비자금 조성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 구속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12·12 및 5·18 사건으로 1995년 서울지검에 구속된 전력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로 대검 중수부 수사를 받던 2009년 5월 고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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