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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친일파 행각 기술했지만 당시 정부가 再版부터 삭제"

입력 : 2015-10-25 18:55:07 수정 : 2015-10-25 22: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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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봉투 돌려… 집필 거부하자 정부서 협박" 25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공식 자료인 ‘국사편찬위원회 65년사 - 자료편’에 실린 1974년 고교 국사교과서 근·현대사 집필자인 윤병석(85) 인하대 명예교수의 증언록은 국정 국사 교과서가 정권의 뜻에 따라 수정·변경되는 사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정 교과서의 왜곡 과정 생생히 전달

국편이 구술자료 수집팀을 파견해 윤 교수의 증언을 채록한 것은 창립 60주년을 준비 중이던 2005년 7월. 당초 목적은 윤 교수가 주도한 ‘독립운동사’ 편찬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국편은 자료집 후기에서 “윤 교수의 회고에서는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살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당시 증언에서 민관식 당시 문교부 장관과 국편이 ‘수정 불가’라고 약속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교정에서 재판까지 전방위 수정

정부와 국편은 교정 단계부터 내용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집필자들이 집단으로 가서 수정한 내용을 모두 원상복구하라고 항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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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는 교정 때부터 대폭 고쳤고, 인쇄 단계에서도 쉼 없이 수정·변경했으며, 집필자의 항의에도 결국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고쳐버렸다는 게 윤 교수의 증언이다.

특히 1974년판 초판의 근대사 단원에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 등의 친일 행각이 적시됐지만, 정부에 의해 재판부터는 빠졌다고 밝혔다. 즉 당초 초판에는 최남선과 이광수 등의 친일 행각이 적시됐지만, 재판부터 빠져 ‘이상한 교과서’가 됐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인 친일 행적이 모호한 표현으로 삭제·축소됐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친일파 기술의 삭제 주체와 관련해 “거기(문교부)서 만들었지”라고 답해 정부임을 분명히 했다.

◆문교부 장관 명의 돈봉투 돌아

정부는 당시 1974년 고교 국사의 근·현대사 부문을 윤 교수가 집필했다고 밝혔지만, 그는 근대사만 자신이 쓰고 5·16과 유신 등의 현대사 부문은 정부(문교부 편수관)가 직접 썼다고 털어놓았다. 집필자 중 한 명이던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문교부가 집필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을 포함하도록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돈봉투가 나돌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윤 교수는 민 장관 명의의 돈봉투를 하나씩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나중에 교과서 집필을 거부하자 정부의 협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국사편찬위원회 65년사 - 자료편’(2012)에 실린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의 증언록

-면담일자: 2005년 7월26일

-면담장소: 서울시 서초동 구술자 자택

-면담자: 허영란

-면담주제: 국사편찬위원회와 나

구술자(윤병석 교수·이하 윤): (중략) …우리(필자들)가 회의를 해서 (민관식) 장관이 편찬위원장인가 뭐 그래서 하는데, 조건을 달았다고, ‘우리가 쓰기는 단일 교과서(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주는데 이거를(이것을) 에…수정을 안 한다’는 조건으로.

면담자(이하 면): 음….

윤: 절대 수정을 하지 않고 양 조정도 아주 뭐 필요불가결한데 양 조정도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게 다 다짐을 해서 그걸 했었는데, 그래서 편찬위원장을 선출하는데 강진철 교수(중학 국사 고대사 담당)하고 민 장관하고 동기동창이라고 대학에, 그 둘이 친해요 아주. 둘이 친하니까, ‘그 사람만 시키면 민관식(장관)이가 거짓말 안 하고 그런다’고, 가서 우리는 글을 쓰는데 ‘수정도 안 할 거고 또 저 그 양도 안 할 거고 사진도 뭐 안 할 거고’, 다 이런 조건이라면 써준다. 아이 우리가 졌는데 그거야 뭐 그 참 말씀 들어보니까 ‘학자님들, 대학자님들 모시고선 그걸 누가 감히 거기다 한 자라도 손을 댑니까’ 말이야, 어느 편수관이 ‘그랬으면 내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말야, ‘한 자도 손 안 대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거 그 하는 경우에는 사표를 다 내겠다’고 그 나올 적에 보니까 흰 봉투에 민관식(장관)이라고 큰 봉투를 하나 주고, 그때서부터 타락하기 시작 허허…

면: 허허허.

윤: 그러구선 그 현대 해방 이후에가 문젠데 해방 이후에 하라 그랬더니 아무도 안 쓴대, 나도 뭐 해방 이후는 쓰라 그래야 써볼 자신이 없다고 그러고 이현종(교수)도 쓸 자신이 없다 그러고, 해방 이후는 못쓴다니, 그 해방 이후는 문교부에서, 문교부 편수관이 쓰도록 하고, 그래서 내내 그렇게 해방 이후에 해서 그렇게 하기로, 그렇게 해서 원고 다 돼서 넘겼더니, 저 장문이라 그러는데 가서 뭐 몇 번 잘 얻어 먹었지 거 무슨 봉투도 주고 그런 흐흐….

면: 허허허.

윤: 그런 식으로 아주 그냥 교정이 딱 나왔는데 보니까, 위에서부텀 다 밀어 고쳐놓고 전부 한글루다가 내려다 아주 교정 나오는 게 싹 달라… 하 그래 그럼 가서 다 모여서 가서 항의했더니, 허 ‘그거 누가 그랬느냐’고 말이야, ‘그거 다 도로 고쳐 놓으라’고 편수관들 다 ‘그거야 야단을 치는’… 어 야, 야단을… 아 그래 그런 줄 알고 한참 있다 봤더니, 그 편수실장이 있다가 ‘저 장관이 며칠 내로 가는 장관인지 압니까, 그만두시는데 암말도 말구선 우리 하라는 대로 하시죠’. 그래도 있는 동안에까지는 하도 투쟁을 한 바람에, 그래 초기 단계는 역사교과서 문제는 근대사 쓰는데 그 친일파도 썼다고, 그 육당이나 이광수 같은 사람 저것도 쓰고, 초판에는 그런 게 들어가 있다고, (1974년 9월17일)민 장관 그만두고 났더니 재판서부터는 다 없어지고선 완전히 이상한 교과서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구.

면: 그건 선생님께서 고치신 게 아니라….

윤: 어 거기(문교부)서 만들었지.

면: 거기서(문교부) 일방적으로 고친 건가 보네요, 그게 그럼 처음, 최초의 국정 교과서를 집필하시는 데 선생님께서 참여하신….

윤: 예, 예, 그렇죠. 그러고 또 많이 삭제를 해다가 그걸 그렇게 해서 투쟁을 해서 나온 교과선데, 그러다가 그게 하도 여론이 나쁘니까, 여론이 나쁘니까 그다음에 이규호가 저 국사편찬, 저 문교부 장관이 되고 박영석(1984∼94년 국사편찬위원장)이가 뭐가 됐을 적에 새로 국사교과서를 편찬해야 된다고 나오더라구, 그때 날 나오라 그러는데 나는 ‘잡아가더라도 거긴 안 나간다’. 그래서 그것 땜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뭐 그러니까 뭐 ‘옛날에 받은 돈을 얼마를 받았는지 아나, 봉투 주는 거… 받았는데 안 받아줬다’는 둥 뭐 이러저러 뭐 협박도 하고 뭐 그 야단을 치고, 그렇게 겪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 뒤에서부터 한 번도 거기 쓰는데, 회의에도 안 나가봤지. …(중략)…

면: 허허허.

윤: 그렇게 해서 큰 저건 안 받았고 서로 돌려가면서 한번 보긴 했지. 그 이외에는 첫 게 나올 적에는, 그 이외에는, 에… 누한테 간섭은 안받았어요. 그 담에 문교부 들어가서 그 사람들이 인쇄하는 사이에 자기네들이 휘딱 바꿔 놨던 거를 우리가 가서 항의하는 바람에 그 도록 복원했다가 나중에 도로 또 자기네들이 갖다 이상한 책 만들어놓고.(이하 생략)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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