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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붓놀이’ 결실… “흙놀이에도 수묵의 정신 묻어나더라”

입력 : 2015-10-20 20:55:06 수정 : 2015-10-21 09: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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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징더전서 1년간 도자작업 이종목 작가 지필묵의 한국화를 견인해 온 이종목(58·이화여대 교수) 작가는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세계 도자의 메카 중국 징더전(景德鎭)에서 1년간 머물며 작업을 했다. 도자작가도 아닌 그가 왜 그곳에 갔을까.

“흙에 몸의 리듬을 담고 싶었습니다. 고령토 반죽에 손을 맡기니 절로 형상들이 만들어졌어요.”

그는 어린아이 흙놀이 하듯 그렇게 한 해를 놀았다. 주변 중국작가들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수묵화 작가가 웬 도자작업이냐는 눈치였다. 붓 대신 흙을 만지고, 그것도 조몰락거리는 모습이 영 눈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저는 20여년간 해 온 붓 드로잉 작업으로 체득된 몸의 언어를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붓이 아닌 손으로 흙에 지문을 남기는 심정으로 흙작업을 했습니다.”

먹 드로잉 작업을 일상처럼 해 오고 있는 이종목 작가. 자연 등 주변과 교감한 내용은 드로잉이 되고, 캔버스에선 작품으로 승화되고 있다.
10년 전 그의 작업실에서 산처럼 쌓인 드로잉 작업을 본 적이 있다. 요즘도 그는 시간만 나면 몸의 리듬을 먹 드로잉에 담아내고 있다. 그가 주변 환경과 교감하고 느끼고 한 것들이 먹 드로잉이 됐다. 자연 등에서 터득한 몸의 언어라 할 수 있다.

“친숙한 도자인장을 만들어 보았어요. 놀라운 일은 인장의 몸통을 치장하는 형상에 그동안 제가 그려 온 드로잉 산수 풍경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게 아닙니까. 손이 절로 흙을 주물러 만들어 냈어요.”

주변의 중국친구들도 섬세한 손놀림에 놀라는 눈치였다. 사실 작가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그동안의 붓 놀이가 가져다준 ‘신내림’ 같은 것이었다.우리나라 인장의 시원은 환웅이 하늘로부터 가져왔다는 천부인(天符印)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천부인은 천상의 영험과 신력(神力)을 인(印)으로 표현한 우리 역사 최초의 인장이라 할 수 있다.

“주위에선 새로운 시도라고 하지만 저는 그냥 가야 할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화의 새로운 모색이니, 하는 수식어마저도 거치장스럽게 여긴다. 그저 묵묵히 한국화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먹과 색이 조화된 붓질의 리듬이 캔버스 작품으로도 태어났다. 수묵이 아닌 화려한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다. 얼른 보기에는 서양의 액션 페인팅 같지만 궤가 다르다. 깊이감과 더불어 산수풍경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동양 미술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운생동의 구현이다. 오랜 드로잉 내공에서 나오는 필획이 주는 미덕이다. 결국 그간 그가 주창해온 모필 수묵미학의 정체성이 발현된 결과이다. 다양한 매재를 실험하면서도 꾸준히 지켜온 이종목 회화의 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30일까지 통의동 아트사이드에서 열리는 전시는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다. 

작가가 중국 징더전에서 직접 흙을 빚어 만든 세라믹 인장.
동시대에 맞는 현대적 수묵화에 대한 매재적 실험들이 수묵화 고유의 매력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줄 그의 다양한 시도들은 수묵의 정신, 그 근본적인 정체성에 대한 오랜 고찰이 바탕이 된 수묵화의 변주라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이종목 작가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미술감독, 영화 ‘취화선’의 작품 제작에 참여하며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작가이다. 서구미학으로 포장된 현대미술의 조류에 대해 한계를 절감한 그는 1992년부터 동양화의 초심, 기본으로 돌아가 자연을 직접 마주하는 작업방식으로 작업을 해 오고 있다. (02)725-1020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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