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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붓으로 한국 문학의 巨匠을 추억하다

입력 : 2015-09-24 20:43:47 수정 : 2015-09-24 20: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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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서적 출간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미당 서정주와 소설가 황순원을 기념하는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미당이 지나온 세월의 족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미당 서정주 평전-더 이상 아름다운 꽃이 질 때는’(은행나무)과 황순원 소설그림집 ‘소나기 별’(교보문고)이 그것이다. 미당 평전의 지은이는 이경철(60·문학평론가) 한 사람이지만, 소설그림집은 황순원을 포함해 그림을 그린 화가들(김선두 방정아 송필용 이수동 이인 정종미 최석운)과 엮은이 강헌국을 포함해 9명이 가세한 셈이다.


두 사람 모두 한국 문학의 거장이라는 점에서는 사족이 필요 없다. 1915년 남(전북 고창)과 북(평안남도 대동군)에서 3개월 간격으로 태어나 식민지 시절에 청춘기를 보냈고 전후 곡절 많은 한국 현대사를 건너와 이승을 떠난 시점(2000년)도 같다. 미당은 ‘시의 정부(政府)’, ‘부족 언어의 주술사’, ‘시선(詩仙)’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 시의 최고 경지를 일궜다는 평을 받고 있다. 황순원은 절제된 문장으로 일제강점기와 전후 피폐한 한국 사회의 시대상과 정서를 미학적으로 응집시켜 한국 소설의 한 전범을 만들어낸 대표작가로 꼽힌다. 그렇지만 이들이 한국 현대사의 고비를 헤쳐 온 삶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미당은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높이 외치며 마지막 발악을 하던 시점에 종군기자로 일본군 기동 훈련을 취재하기도 하고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전쟁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시를 쓰거나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한 작품까지 쓴 사실이 뒤늦게 부각돼 말년에 이르러 쓸쓸한 삶을 살다가 간 경우다. 평전의 지은이는 “창피한 대로 꽤 길 미래의 일본인의 동양 주도권은 기정사실이니 한국인도 거기 맞추어서 어떻게든 살아 견뎌야 한다는 생각을 세우고 만 것이다. 정치 세계에 대한 내 부족한 지식이 내 그릇된 인식을 만들고, 이 그릇된 인식에서 나온 언행들이 내 생애의 가장 창피한 일들을 빚었다”는 미당의 자전적 산문을 인용했다. 5공화국 신군부 지지발언에 대해서도 생의 마지막에 서정주는 “그때 그들에게 짓눌리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협조했으나 돌이켜보니 내 짧은 생각이었네”라고 사죄하기도 했다.

1941년 간행된 미당 서정주 첫 시집 ‘화사집’
현실을 간파하는 정치적 감각은 철없는 아이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그가 평생 뽑아 올린 1000여 편의 시들은 묻어버리기에는 뛰어난 것들이어서 친일행적과는 별개로 작품을 따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서정주가 살아온 삶의 곡절들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자료는 물론 적극적인 취재를 통해 소설을 전개하듯 흥미롭게 풀어나간 이경철은 “민족의 격동기인 지난 20세기 ‘최고의 문제적 시인’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시인이기에 그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려 했다”면서 “서정주 시는 친일과 어용과 순수로 매장당한 채 김수영과 김춘수 쪽만이 평가돼 오며 오늘날 문학의 난맥상과 나아가 인간성 상실을 부추기고 있지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황순원은 독립운동을 하던 가문에서 성장해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서 수학한 뒤 소설을 쓰다가 일제 말기인 1942년 이후에는 일본의 한글 말살 정책을 피해 아예 소설을 발표하지 않고 고향에서 숨어 살았다. 그는 일제강점기는 물론 전후 피폐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단아하고 깊은 슬픔을 자아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선비 같은 길을 걸었다. 그의 대표 단편(소나기, 별, 학, 곡예사, 독 짓는 늙은이, 필묵장수, 목넘이마을의 개, 내일/다시 내일)에다 화가 7명이 그림을 그려 넣은 책이 이번에 나온 소설그림집이다.

황순원 단편 ‘별’에 붙인 김선두 화백의 ‘어떤 밤’(장지에 먹 분채, 63×45㎝).
황순원 대표 단편이라면 ‘소나기’를 먼저 꼽겠지만 “아이가 하늘의 별을 세며 별은 흡사 땅 위의 이슬과 같다고 생각”하는 단편 ‘별’의 서정을 아는 이도 정작 많지는 않다. 푸른 밤하늘에 이슬처럼 맺혀 있는 별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김선두 화백의 그림처럼 여타 단편들에도 각기 다른 화가들의 개성이 삼투돼 어두웠던 시절의 정한을 따스하게 받쳐준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교보문고는 이 그림들을 선보이는 ‘황순원, 별과 같이 살다’를 10월 1일부터 21일까지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에서 개최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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