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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규

나무껍질이나 갑각류의 등 같은 먼 친척 할머니의 몸을 씻겨 본 적 있다 내가 아직 걸어 본 적 없는 수만 갈래의 길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낡고 척박한 비포장도로가 온몸에 새겨져 있었다 균열 투성이 인간의 몸은 짐승의 뿔이나 향기로운 관(冠)에 새겨진 세월의 무늬를 읽을 때처럼 당당하거나 삼엄하지 못했다 비눗물이 수만 갈래의 길 속으로 스며들거나 흘러내릴 때 손바닥 가득 만져지던 비애

캄캄한, 한때 차갑거나 뜨거웠던 몸
생선 비늘처럼 벗겨 낼 수 없는,
헐거워진 껍데기 가득 새겨 넣은 낡은 생의 기록들

그 여름 내내
방 안 가득 비누 거품들이 떠다녔다

―신작시집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민음사)에서

◆ 송종규 시인 약력 

▲경북 안동 출생 ▲1989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 ‘고요한 입술’ ‘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 ‘녹슨 방’ ▲대구문학상, 웹진 시인광장 시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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