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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 화평 담은 조선시대 ‘전설의 화첩’

입력 : 2015-09-10 17:47:50 수정 : 2015-09-10 17: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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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 ‘석농화원’ 번역본 출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명지대 유홍준 석좌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답사기 열풍이 일던 1990년대에는 ‘아는 만큼 보인다’로 축약돼 문화재를 감상하는 원칙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원래는 18세기 서화 수장가인 김광국의 ‘석농화원’(石農畵苑)에 있던 구절이다. 유 교수는 이런 사실을 밝히며 석농화원을 종종 소개했는데, 아예 번역까지 해 ‘김광국의 석농화원’(눌와)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김채식 성균관대 책임연구원이 작업을 함께 했다. 두 사람은 석농화원을 ‘전설적인 화첩’이라고 소개했고, 연구자들은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이라고 평가한다. 전문가를 위한 책에 가깝지만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날카롭고, 때로 서정적인 비평을 접하고 싶은 독자라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정조시대 최고의 서화 수장가’ 석농 김광국

김광국은 중인 신분인 의사였다. 21살에 의과에 합격했고, 실력이 좋았던지 궁궐 내 의료기관인 내의원의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 그림 수집을 시작한 것은 10대 때부터였다. 석농화원에 글이나 글씨를 쓴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김광국이 그림을 수집하며 신분, 나이, 당색을 초월해 당대 명사들과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화평을 쓴 사람으로는 조선후기 대표적 명필인 이광사, ‘예원(藝苑)의 총수’ 강세황이 눈에 띈다. 박지원과 박제가는 화평의 글씨를 썼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조선후기의 문장가인 유한준이 쓴 석농화원 발문에서 따온 것이다. 유 교수는 “화평을 지은 문장가는 18명, 화평을 글씨로 쓴 서예가는 26명이다. 사실상 동시대의 명사들을 거의 망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광국은 심사정을 “우리나라 화가 중 집대성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높이 샀다. 심사정의 ‘만폭동도’에 대해서는 “만년작으로 매우 웅혼한 기상이 있다”고 평가했다.
눌와 제공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은 김광수다. 김광수는 30살 정도 어리고, 신분도 낮은 김광국을 ‘제자 내지는 후계자’로 삼아 멘토 역할을 했다. 심사정, 정선, 이인상 등의 대가들이 김광수를 위해 그림을 그려줄 정도로 뛰어난 감식가였다.

◆석농화원 전모 보여준 ‘육필본’의 등장

김광국은 50대에 수집품을 모아 화첩을 꾸미기 시작했고, 꾸준히 보완해 70살에 10권의 석농화원을 완성했다. 한 수장가의 말년이 응축된 노작이었지만 제대로 전해지지는 않아 그간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그림과 화평을 바탕으로 전모를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다 2013년 한 고서경매에 석농화원의 육필본이 출품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 내용을 단순히 기록한 게 아니라 책으로 발간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육필본의 등장으로 석농화원은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김광국은 석농화원에서 김홍도의 ‘군선도’에 대해 “맑은 자태나 세상을 초월한 모습이 속세 밖의 운치를 띤다”고 평가했다.
눌와 제공
석농화원에는 우리나라 화가로는 고려의 공민왕, ‘몽유도원도’의 안견을 비롯해 신사임당, 김명국, 심사정, 최북, 김홍도 등 101명의 작품이 실렸다. 친분이 깊었던 정선, 심사정의 작품이 각각 18점, 14점으로 많다. 송나라 휘종, 소식, 조맹부 등 중국 화가 28명의 작품도 실었다. 일본, 유구, 러시아 등의 외국 작품까지 합쳐 모두 267폭을 수록했다.

◆“날카로운 회화비평부터 문학적 감동까지”

김광국은 비평에서 역대 화가들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밝혔다. 정선의 작품에 대해서는 “(중국) 송, 원의 훌륭한 작품과 견주어도 많이 양보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심사정을 두고는 “우리나라 화가 중에 집대성한 사람은 오직 현재 심사정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김홍도의 ‘군선도’(群仙圖)를 평하는 글에서는 “맑고 여윈 자태나 세상을 훌쩍 초월한 모습이 매우 속세 밖의 운치를 띠니…신선이 있다면 반드시 이와 같을 것”이라고 적었다. 18세기 시인 화가인 조영석을 김홍도와 비교한 것도 흥미롭다. 그는 “김홍도가 관아재(조영석의 호)의 법도를 본받았는데…끝내 조영석과 같은 담백하고 소산한 운치를 터득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가차없이 혹평을 한 것도 있다. 진경산수에 능했던 이윤영의 ‘풍목괴석도’를 평가하면서 “후세에 그림을 보는 자들은…사모하여 배워선 안 된다”고 깎아내렸다.

외국의 작품 중 네덜란드 동판화을 보면서는 “현미경을 가지고 살펴보면 곧장 사람으로 하여금 기이하다 소리치게 만든다”며 낯선 문화에 대한 느낌을 표시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일본 우키요에(풍속화)나 네덜란드의 동판화가 석농화원 화첩에 실렸다는 사실은 18세기 조선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분석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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