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외환위기를 겪은 다음해인 1998년 18.4명으로 전년 대비 40% 급증했다.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가 폭증했던 2003년(22.6명)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8년(31.0명)도 각각 26%, 15%씩 자살률이 늘었다. 특히 경제위기 상황으로 한 번 치솟은 자살률은 그 다음해에도 회복되지 않은 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특성을 보였다.
자살의 원인이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의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 전문가들도 경제적 어려움이 곧 가정불화나 고독 등 심리적인 문제나 육체적 질병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국가는 빈곤정책과 복지제도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자살예방책을 제 때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자살예방의 날이 제정된 2003년부터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쓰기 시작했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듬해 정부가 ‘자살예방 정책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자살 고위험군 관리에 집중한 1차 종합계획(2004∼2008년)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골자로 한 2차 종합계획(2009∼2013년)이 끝났다. 2011년에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제정돼 이듬해 시행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3차 종합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의 자살 예방을 위한 노력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3차 계획을 연내에 발표하려고 준비 중”이라며 “(자살에 대한) 세부적인 원인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심리부검도 도입하는 등 세밀하게 접근해 3차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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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안전망이 있어야 자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이후에도 사회보험이나 연금을 통해 개인이 희망을 갖고 회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경제적 타격이 누적되면서 만성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택하게 된다”며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대책과 자살위험군의 심리적 불안감을 체계적으로 치료해 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진 가톨릭대학교 교수(예방의학교실)도 “자살예방을 위한 예산과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우중·권구성 기자 kusu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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