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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도대체 어디서 피우라는 거야?"

입력 : 2015-08-18 15:40:47 수정 : 2015-08-18 17: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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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담뱃값이 갑당 2000원씩 일괄 인상되고 어느덧 8개월이 훌쩍 지났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4월까지 올라간 담뱃값으로 정부가 확보한 추가세수는 6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세금은 현재 금연치료, 금연캠페인 등 금연 지원사업에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같은 세금을 직접 내고 있는 담배 구매자(흡연자)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 것일까. 흡연권과 혐연권(흡연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을까.

◆ 흡연자-비흡연자 모두 '흡연구역 지정' 원해

올 초부터 식당이나 커피숍 등 실내 모든 구역이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간접흡연 피해 방지와 금연율 증가를 위해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뚜렷한 대안 없이 실내 흡연을 금지한 결과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울 공간이 사라지고, 길거리로 내몰린 흡연자들 탓에 간접흡연 피해가 되레 심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 79.9%가 '길거리 흡연구역 조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흡연구역이 불필요하다'는 의견은 20.1%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4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흡연구역이 필요하다는 응답자중 비흡연자는 80.6%로, 흡연구역 조성에 찬성하는 흡연자(77%)보다 더 높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조사결과는) 비흡연자가 길거리 간접흡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흡연자들은 구체적 흡연 가능한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라면서 "흡연자들이 지정된 흡연구역에서만 담배를 피운다면 길거리에서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며, 결국 흡연자와 비흡연자 대다수가 흡연구역 조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 흡연부스, 제대로 운영되고 있나?

▲KTX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서울지하철 14호선 등 각종 기차 노선이 겹쳐 늘 붐비는 서울역. 이곳에는 코레일이 지난 2013년 11월 흡연자들을 위해 설치한 흡연부스가 동부와 서부 양측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흡연자들은 부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며, 근처를 통행하는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취재 결과 이는 바로 흡연부스 입구에 붙은 '폐쇄' 표시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에 있는 학교 통학을 위해 서울역을 자주 찾는 대학생 A씨(21)는 "사람들이 모두 흡연부스 밖에서 담배를 피워 숨을 참아도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을 수 없다"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C씨(45)도 "흡연부스가 폐쇄된 이후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로 인해 기피하는 손님들이 많아졌다"고 하소연했다.

흡연자 L씨(52)는 "부스가 폐쇄돼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다보니 지나가는 행인에게도 미안하고, 아무데나 버려진 담배꽁초를 보며 흡연자로서 자괴감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취재차 직접 이곳을 방문해 살펴본 결과 폐쇄된 동부와 서부의 흡연부스에는 버려진 담배꽁초들로 가득해 지저분한 상태였고, 근처를 지나가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동부 흡연부스의 경우 서울역 출입구와 맞닿아 있어 담배연기가 자욱한 상태였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는 밀폐형 흡연부스와 개방형 흡연구역을 함께 운용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좀처럼 흡연부스를 찾지 않는다. 한 학생은 "평소 지켜보면 흡연부스 보다 야외 흡연구역을 찾는 이들이 더 많다"고 밝혔다. 야외 흡연구역에서 만난 또 다른 학생은 "흡연부스 안의 제연기가 돌아가기나 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연기가 꽉 찬다"며 흡연부스 이용을 꺼리는 이유를 말했다.

실제로 부스 천정의 제연기 필터는 뜯어져 있거나 먼지가 가득 찬 상태였으며, 부스 내의 담배연기도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서울시내 곳곳의 흡연부스들이 폐쇄되거나 흡연자들에게 외면받는 원인을 놓고 '관리소홀'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흡연부스는 환기구 청소 등의 관리가 미흡해 이용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역의 흡연부스처럼 설치 이후 폐쇄된 경우 흡연자들이 이용할 수도 없고 철거하지도 않은 채 흉물로 전락해 있다. 즉, 무책임한 흡연부스 운영으로 인해 애꿎은 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 담소협, "흡연부스 어렵다면 다른 형태의 흡연구역 조성해야"

이에 대해 최비오 담배소비자협회(이하 담소협) 정책부장은 흡연부스를 대체할 '개방형·반개방형 흡연구역' 조성을 촉구했다. 정부가 흡연부스 설치를 설치비용, 관리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무시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담소협에 따르면 흡연자들이 흡연부스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밀폐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밀폐된 흡연부스의 구조적 특징으로 흡연자가 사용을 꺼리며, 여기에 미흡한 관리로 인해 흡연부스의 위생상태까지 좋지 않아 흡연자들로부터 더욱 외면 받고 있다는 논리다. 담소협이 제안하는 개방형·반개방형 흡연구역은 기존 흡연부스가 가진 밀폐공간이라는 점을 개선할 수 있는 수단이며, 동시에 설치비용도 비교적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이웃나라 일본이 이와 같은 개방형 흡연구역을 운용하고 있다. 최 부장은 "다만, 개방형이나 반개방형 흡연구역의 경우 비흡연자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간접흡연 피해가 없는 지역에 설치해야만 비흡연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금연지원 뿐 아니라 흡연자 위한 정책 역시 시급

흡연자들이 내고 있는 세금은 현재 온갖 금연정책 사업에만 들어가고 있다. 정작 흡연자들을 위해 흡연부스를 설치해달라는 요구에는 관리소홀, 폐쇄로 응답하고 있는 실정인 것. 최근 서울시는 길거리 흡연을 규제하기 위해 금연거리 조성에 나섰다. 또한 올 초 시행된 실내 흡연금지 역시 간접흡연으로부터 비흡연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도 실내에서도 흡연할 공간이 없고, 흡연부스마저 관리소홀로 이용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것일까.

최비오 정책부장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흡연 공간 마련, 그리고 흉물로 전락한 흡연부스 운영의 실태 점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라이프팀 차주화 기자 cici0608@segye.com

<남성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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