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占易 아닌 學易… ‘주역’의 또다른 얼굴 만나다

입력 : 2015-08-14 23:33:34 수정 : 2015-08-14 23: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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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괘와 384효의 해석에 따라
길흉화복 점치는 ‘상수역’과
인간과 역사 변화 통해 삶 통찰
‘의리역’으로 나뉘어 오늘에 전승
정이천 지음/심의용 옮김/글항아리/4만8000원
주역/정이천 지음/심의용 옮김/글항아리/4만8000원


중국 한나라 때 나온 ‘주역’은 음·양을 조합한 6획의 ‘괘’(卦)로 이뤄진다. 총 64괘가 전해진다. 1괘는 6효(爻)로 구성돼 모두 384개의 효가 나온다. 애초 주역의 괘와 효에는 짤막한 설명들인 괘사(卦辭)와 효사(爻辭)가 전해진다. 이 괘와 효의 해석에 따라 주역은 갖가지 양태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역학은 크게 두 가지로 전승됐다. 하나는 ‘점역’ 혹은 ‘상수역학(象數易學)’이고, 다른 하나는 ‘학역’ 혹은 ‘의리역학’(義理易學)으로 불린다. 상수역학은 ‘우주 운행의 변화’를 상징화해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고, 의리역학은 ‘인간과 역사의 변화’를 통해 삶을 내다보는 것이다. 상수역학은 재난이나 자연의 이상 현상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명리학으로 발전했다. 훗날 천간지지(天干地支)가 가미돼 세속화된 명리학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전해지는 주역이 바로 이것이다. 통치자들은 이를 통해 국가 통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런 흐름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 의리역학이다.

성리학의 기초인 주역을 정리하고 체계화한 정호·정이의 초상화. 왼쪽이 형 정호이고, 오른쪽이 주역을 의리역학으로 정리·해석한 정이의 초상화다.
글항아리 제공
도서출판 글항아리가 이번에 새로 번역해 낸 ‘주역’은 의리역학에 따른 주역 해설서이다. 의리역학을 발전시킨 인물은 한나라 때 왕필이고 이를 정리·체계화한 사람이 송대 정이천(程伊川·1033∼1107)으로 ‘역전’(易傳)을 썼다. 이 책은 역전을 저본으로 번역됐다. 정이·정호 형제는 주역을 토대로 성리학과 양명학을 창안한 송대의 철학자다.

의리역학은 훗날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 건국이념을 만든 정도전 역시 삼봉집에서 정이천의 역전을 참고해 국시로 정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주역은 조선의 이념적 기반이 됐음에도 한국에서는 오로지 점치는 고전으로만 알려져 있다.

정이천은 “역이란 우주의 질서와 함께 인간 삶의 갖가지 양태”라고 풀이한다. 각 괘를 구성하는 효의 모양이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갖가지 상황을 상징, 인간 사회와 사물의 모든 원리를 망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이천이 밝힌 역의 중심은 의리(義理)다. ‘사물은 이(理)이고, 사물을 처리하는 것이 의(義)다.(在物爲理, 處物爲義)’ 역은 사물의 이치를 밝히면서 동시에 현실 속에서 감당해내는 지혜란 의미다.

다시 말해 ‘나’와 ‘외부 사물’의 접촉에서 이를 올바로 해결해나가는 것이 곧 ‘의리’라고 했다. 이런 면에서 정이천이 정리·발전시킨 역은 형이상학인 동시에 현실의 변화와 이치를 다룬 사회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을 일으킨 주희는 정이천의 ‘역전’에 대해 “그는 역이라는 책을 인간사를 다루는 것으로 확정했다. 성인이 이 책을 만든 것은 세상의 인간사에 수없이 다양한 변화의 양태가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정이천 캐리커처
역전을 번역한 성신여대 심의용 교수는 “인생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미래에 어떤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이라면서 “의리역학은 인간 간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올바른가를 결단하도록 가르치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풀이했다. 상수역학은 60갑자와 천문학 별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인간 미래 운명을 예측하는 데 반해 의리역학은 어떤 상황에서든 조급하거나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찾는 것이라는 얘기다.

정이천은 주역을 그 당시 지식인들의 도덕적 측면 즉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가장 적합한 행위를 가르치는 문헌으로 인식하고 사용하도록 했다.

송대에도 주역은 개인의 운명이나 길흉화복을 점치는 명리서가 아니었으며, 사회·정치적으로 책임 있는 사람들의 통치와 처세의 책이었다는 것이다. 정이천은 “옛날 사람이 점치는 것은 의심을 끊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송대) 사람들이 점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 곤궁할지 성공할지를 계산하고 영달 여부를 헤아리려고만 할 뿐이니 이 또한 미혹되었다”고 한탄했다.

심 교수는 “서양의 천문학이 전래되면서 천문학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지는 역학은 서양 과학에 밀릴 수밖에 없었고 해석하기 난해했던 주역은 세속화된 쪽으로 전래될 수밖에 없었다”면서 “상수역학이 주류를 이루는 국내 주역 학계의 상황으로 볼 때 의리역학은 기초 문헌으로 참조할 가치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의리역학으로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주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심 교수는 강조한다. 심 교수는 5년여 작업 끝에 13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주역해설서를 번역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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