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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아베의 덫에 걸린 韓·日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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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04 21:26:37 수정 : 2015-08-04 21: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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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불만 배출구된 嫌韓감정
꽉 막힌 對日관계 대승적으로 풀자
요즘 한국의 여론이 일본의 전후 70주년을 맞아 발표될 아베 담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성과 사죄 표현에 대한 관심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3년 4월 참의원 답변에서 과거 침략의 역사를 부인한 것을 시작으로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보여 왔다. 같은 맥락의 행보가 이어지면서 2년 반에 걸쳐 한국의 여론은 아베의 일거수일투족에 뜨겁게 반응해 왔다. 급기야 아베의 역사관은 최근 일본과 세계 지식인의 규탄 성명으로까지 파장을 몰고 왔다. 그러면 대외적인 이미지 손상을 감수하면서까지 역사의 수정을 시도한 아베의 의도는 무엇일까. 설령 아베의 담화에 반성과 사죄의 표현이 포함된다고 한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는 것일까. 기껏해야 20년 전 무라야마 담화 내용의 되풀이만 될 듯하다.

이덕봉 동덕여대 명예교수·전 한국일본학회 회장
아베정권이 처한 그간의 상황을 살펴보면, 밖으로는 2012년 이후 중국과의 영토분쟁으로 인한 심한 압박이 있었다. 안으로는 2011년 쓰나미와 방사능 피해로 전국이 침체의 늪에 빠진 상태에서 국민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킬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베정권은 이러한 돌파구로 수정주의 역사라는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헌법의 해석을 바꿔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외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대내적으로는 강한 일본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사회적 스트레스는 혐한(嫌韓)감정으로 풀어가게 했다. 아베가 설치한 덫에 대외적으로는 아베 스스로가 걸려든 면이 있지만 대내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덫이었고, 그 덫에 한국이 걸려든 것이다. 그동안 일본에서 중국을 혐오하는 정서는 표출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중·일 관계의 개선 조짐과 함께 한국으로 몰려왔던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일본으로 몰려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반일 감정과 일본의 혐한 감정은 지나치게 깊어져 쉽사리 풀릴 것 같지가 않다.

같은 덫을 경험한 상황에서 왜 이렇게 다른 결과를 초래한 것일까. 거기에는 정보의 역할이 컸다. 일본의 언론은 한국어판이 없다. 중국의 언론은 일본어판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인터넷 일본어판을 발행하고 있어 일본인들이 한국의 적대적인 기사를 여과 없이 접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네티즌이 쏟아내는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표현은 우리가 만든 자동번역기를 통해 일본의 네티즌이 실시간으로 접하게 된다. 즉, 한국에서 전개되는 일본에 대한 생각과 표현은 고스란히 일본인에게 중계되는 것이다. 일본어판 기사를 통해 일본 독자를 설득하기는커녕 한국이 일본을 적대시하고 있음을 일본인에게 확인시켜준 셈이다. 그 결과 전에 없던 혐한 감정이 일본 열도를 뒤덮게 됐고 회복될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우리 쪽의 의사표현 방식과 정보운영의 취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가 아베의 그릇된 역사관을 바로잡고자 하는 목적은 지난 역사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올바른 한·일관계를 정립해 평화로운 미래를 후손에게 남겨주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여론은 일본을 적성국가처럼 대하고, 경제는 우방으로 대하는 이중적 자세로는 고착상태에 빠진 지금의 한·일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다가올 아시아 시대를 대비한 구체적인 대일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보다 능동적으로 여론을 선도해가야 한다. 여론을 들끓게 해놓고 정치는 물밑에서 교섭하던 20세기의 방법은 양국 정계 모두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선거가 정권을 선택하는 민주화된 정보화시대의 한·일 관계 정립에는 양국 여론의 역할도 매우 크다.

따라서 한국의 언론은 일본어판 기사의 효율성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감정일변도의 표현을 자제하고, 평화로운 아시아의 새 역사를 우리가 선도해 가기 위해 보다 대승적이면서 다양한 대일 자세의 확립이 우선돼야 하겠다.

이덕봉 동덕여대 명예교수·전 한국일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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