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사키의밖에서일본을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일본 역사교과서에는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귀화인(歸化人)이다”라고 기술돼 있었다. 그 내용은 “귀화인들은 대륙에서 불교, 한자, 치수기술 등 선진문화를 가져왔지만 이미 많은 토착주민이 있었고, 소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이러한 역사인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고대사 연구가들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귀화인’이라는 용어에 의문을 갖는 학자가 늘어났다. 그리하여 현행 교과서에는 귀화인이 아니라 ‘도래인’(渡來人)으로 표기돼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귀화인으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귀화인이라는 표현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은 역사적 사실을 국수적(내셔널리즘)으로 왜곡하는 행위이다.

실제로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의 하니와라 가즈로(埴原和郞) 도쿄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많은 수의 도래인이 일본으로 건너왔는데 이 시기는 기원전 3세기쯤부터 서기 7세기까지로 원주민 수를 56만명으로 추정할 때 도래인과 그 자손은 약 48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수의 도래인이 일본으로 왔다는 사실은 컴퓨터 정밀시뮬레이션을 이용한 데이터로도 이미 입증됐다. 즉 7세기 무렵 일본의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볼 때 도래인이 토착주민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던 셈이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외국인이라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의미이다.

야가사키 선문대교수·국제정치학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에 따르면 “일본은 자국문화의 뿌리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여긴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한 뉴스위크는 “일본이 이웃국가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를 숨기고 일관되게 과거를 부정하고 있어 이는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금의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저 자신은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기에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이 느껴져 한국인의 아픈 기억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사실 ‘귀화인의 영향은 무시해도 될 정도다’라는 과거의 학설은 일본인의 단일민족설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이데올로기였다. 실제는 이와 반대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세가와 도시카즈(長谷川壽一) 도쿄대 교수가 영국 왕립학회보에 게재한 논문에서처럼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진다. 어쨌든 앞으로도 거듭된 연구를 통해 한·일관계와 관련한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족기원의 문제가 우월의식이나 차별성 등 내셔널리즘과 연계돼 객관적인 연구가 저해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흔히 한·일관계가 나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서로를 비난하는 일은 자신들의 선조를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법정 스님은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기 위해 만난 적이 아니라 서로 도와주고 사랑하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를 찾고 만난 이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경애하는 마음으로 지낸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가깝고 친밀한 사이가 없을 것이다.

야가사키 선문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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