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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 재앙 키운 고장난 컨트롤타워

입력 : 2015-07-11 08:02:36 수정 : 2015-07-11 08: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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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핑크 지음/박중서 옮김/알에이치코리아/2만2000원
재난, 그 이후(Five days at Memorial)/셰리 핑크 지음/박중서 옮김/알에이치코리아/2만2000원


재난은 초동 대응을 잘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아무도 컨트롤타워를 자처하지 않는다. 컨트롤타워로 나선 사람들조차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상황은 위기로 치닫는다. 잘못된 정보와 유언비어가 난무해 사회 전체가 공황상태에 이른다. 이런 시나리오가 이젠 전혀 낯설지 않다. 도대체 왜 그럴까.

탐사보도로 이름을 날린 의사 겸 기자인 셰리 핑크는 신간 ‘재난, 그 이후’에서 재난은 왜 반복되는지를 분석한다. 2005년 8월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는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세월호 참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유사하다. 카트리나는 유례없는 강력한 허리케인이긴 했지만 사전 대비도 가능했다. 하지만 거액을 들여 구축한 홍수방지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당시 휴가 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보좌관 보고만 받으면서 제때 백악관에 복귀하지 않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카트리나는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재산 피해도 미국 자연재해 중 최대 규모였다.

저자는 유독 많은 사망자를 낸 뉴올리언스 메모리얼메디컬센터에 주목했다. 이 병원은 국가 재난관리 실패의 축소판이었다. 저자는 병원의 닷새를 재구성한 기사 ‘The Deadly Choices at Memorial’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취재에 6년이 걸렸고 500여명을 인터뷰했다.

카트리나가 관측된 날은 2005년 8월 27일이다. 이튿날 뉴올리언스 시장 레이 네이긴은 시민 대피 명령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시청 직원들은 ‘시장에게 대피 명령의 법적 권한이 있느냐’로 논쟁하다 몇 시간을 흘려버렸다. 미처 도시를 탈출하지 못한 2만5000명의 시민들은 시내 슈퍼돔으로 대피했다. 병원 등에서는 우물쭈물하는 주정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정부의 관료들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만 했다.

8월 29일 뉴올리언스는 카트리나의 본격적인 영향권에 들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전기가 끊겼다. 메모리얼메디컬센터는 자체 비상용 발전기를 가동했다. 카트리나는 상륙한 이후 세력이 약해져 병원 지하에 찬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30일 새로운 위기가 발생했다. 뉴올리언스의 제방이 무너져 메모리얼메디컬센터가 물 속에 잠기기 시작했다. 병원의 전기 공급이 거의 차단됐다. 31일 병원은 숨 막힐 정도로 무더웠고, 벽에서는 물이 줄줄 새어나왔다. 화장실 하수도는 막혔고 악취로 숨을 쉴 수도 없었다. 200여쪽의 허리케인 대비 매뉴얼은 아무 소용 없었다. 지휘본부도 우왕좌왕했다. 전기가 끊기자 중환자들이 잇따라 숨졌다.

구조 헬리콥터를 요청하는 과정에서도 손발이 맞지 않았다. 헬기 조종사들은 한밤중 환자들을 구하려고 헬리콥터를 몰고 갔지만, 현장은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다. 헬기 구조가 중단되자 에어보트가 몰려왔다. 전국 각지에서 응급의료기술 자격증 소지자들이 달려온 것이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을 구한 사람들은 주정부와 관련없는 민간구조대였다. 유언비어도 난무했다. 카트리나 사태를 조사했던 미 하원 조사위원회는 “9·11테러가 상상력의 실패였다면 카트리나는 컨트롤타워의 실패였다”고 결론 내렸다. 이 책은 재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다시금 일깨우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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