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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 칼럼] 남 탓 심리의 전염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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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28 21:38:45 수정 : 2015-06-29 10: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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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방역 실패 네탓 공방 눈살
잘못 인정 책임지는 문화 아쉬워
한 조직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구성원의 책임소재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서로 간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남 탓하는 심리가 발동하게 된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한 후 초기 방역에 실패하고 메르스 확진자가 점점 증가했다. 야당에서는 안일하게 대응하는 정부에 대해 지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료산업계에서도 메르스의 국내 확산은 정부와 보건당국의 늑장 대응과 공공의료체계의 고질적 문제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서로 남을 탓하고 책임을 회피해 국민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다. 작년 세월호 사건에서도 있었던 책임 전가가 이번에도 반복됐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현상이 역력했다.

지도층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외국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미국인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카트리나 청문회가 열렸는데, 마이클 브라운 전 연방재난관리청장은 카트리나 피해에 대해 주정부 관리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또한,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며 뉴올리언스 시장과 루이지애나 주지사의 늦은 대피명령을 지적했고, 늦은 대응에 대한 책임을 주정부 탓으로 돌렸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04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태국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그곳에서 500명 이상의 스웨덴 사람이 사망했다. 당시 예란 페르손 총리는 그 책임과 관련해 공직자를 비롯해 국왕까지 계속해서 비난하기도 했다. 물론 이로 인해 그는 이후에 상당한 정치적 반발에 시달리기는 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남을 비난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는 진화론적으로 타고난 성향 중 하나이다. 상대가 자신의 생존에 이득이 될지 아니면 위협이 될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 같은 상대를 비난함으로써 미리 위험 대상을 ‘표시’해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후 받게 될 피해를 미리 줄일 수 있다. 물론 나중에 위험한 상대가 아님을 알게 되더라도 미리 경계해두는 것이 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을 탓하고 비난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서로 남을 탓하느라 정신이 없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함으로써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아상을 방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염성이다. 자기가 잘못한 것일수록 더욱 타인을 탓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는 그걸 보는 옆사람에게 빠르게 전염된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실시된 한 실험이다. 참여자에게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특별 투표를 요구했지만 그의 제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는 것을 들려주었다. 집단을 둘로 나눠 한 집단은 제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대해 다른 사람의 잘못인 남 탓을 하는 내용을 읽게 했다. 다른 집단은 제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대해 주지사 본인이 모든 책임을 떠맡는 내용을 읽었다. 이후 참여자에게 자신이 살아오면서 실패한 경험에 대해 짧게 글을 쓰고 왜 그것에 실패했는지 설명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참여자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탓하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 주지사가 남의 탓을 했다는 글을 읽은 집단에서 자신의 실패에 대해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경향이 2배나 더 많았다.

남의 탓을 하는 심리는 마치 전염병과 같다.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퍼져가는 속도가 메르스 전염 속도 보다 더 빠르다. 자기반성 없이 오로지 상대만을 비난하는 사회에서는 그 어떤 변화와 발전도 가능하지 않다. 본능적으로 인간이 가진 남 탓의 심리가 무서운 이유는 그대로 방치할 경우 그 어떤 전염병보다 무섭게 퍼지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두려움의 문화를 만들고 병들어갈 것이다. 작은 일에서부터 개인이든 조직이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이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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