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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일이 간섭하는 유럽·한국 대학 경쟁력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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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23 21:39:16 수정 : 2015-06-23 22: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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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개혁전도사’ 서남표 前 카이스트 총장이 말하는 한국 교육의 현주소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공항에서 서쪽으로 36㎞가량 떨어진 서드버리로 가는 길에 이용한 택시의 미국인 기사는 서남표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명예교수를 잘 안다고 했다. 그는 서 전 카이스트(KAIST) 총장에 대해 “MIT에서 유명한 분으로 검소하다(humble)”고 얘기했다. 그의 말대로 서 전 총장 부부가 사는 집은 의외로 소박해 보였다. 서 전 총장 부부는 손님을 반겨 맞았다. 미국에 오는 카이스트 학생들이나 교수들도 자주 집에 들른다고 했다. 서 전 총장은 최근 녹내장 수술을 받아 불편한데도 6시간가량의 인터뷰에 응했다.

 


-카이스트 총장 퇴임후 어떻게 보내는지.

“은퇴하니까 하는일 없이 분주하다. 아침에 출근하는 그런 일이 아니지만 관계하는 기관이 꽤 있다. 지난 4월 터키에 갔다왔고 곧 아일랜드에 간다. 9월에는 이탈리아를 가야하고. 강연도 하고 이사회도 참석한다. 시간을 제일 많이 쓰고 정신을 집중하는 건 카이스트에 있을 때 구상한 무선충전 방식의 ‘온라인 전기자동차’(OLEV)에 관한 책 집필이다. 동료들과 집필을 거의 다 마치고 출판사가 검토하고 있다.”

-전기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21세기 공해 문제를 없애야 한다.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CO) 양은 자동차에서 3분의1, 발전에서 3분의1, 나머지 분야에서 3분의1이 만들어진다. 과학자들은 세계 CO양을 2050년까지 50%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내연기관은 에너지가 땅에서 바퀴까지 도달하는 효율, ‘웰 투 휠’(WTW·Well To Wheel)이 가장 낮다. 17% 정도밖에 안된다. 지난 100년 이상 개발했는데도 효율이 더 오르지 않았다. 전기로 하면 효율이 2배로 뛴다. 기존 자동차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절반만 필요하다. 전 세계 기름 생산량의 70%가 자동차에 쓰인다. 결국 내연기관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카이스트 있을 때 2년만에 그 방향으로 가자고 해 놓은 건 대단한 일이다. 5,10년 걸리는 일을 정부가 돕고 해서 빨리 했다. 그게 우리 원천기술이다. 요즘 중국도 이 분야에 많이 들어가고 있다. 중국이 투자에 나서면 우리가 먼저 나섰더라도 기술을 뺏길 수 있다.”

 

-카이스트 총장 재임 7년을 돌아보면.

“퇴임한지 2년이 조금 지났는데 한국에 있을 때 7년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못한 일이 많고 해서 그랬는데 지금 보니 짧은 시간만은 아니었다. 일을 다 하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짧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4년을 하고 연임을 하길 잘한 것 같다. 4년만 했다면 시작한 일들이 자리를 못잡았을 것이다. 모바일 하버, 온라인 전기자동차도 그렇고. 커리큘럼을 바꾸고 교육시스템을 새로 만든 것도 그렇고. 4년만에 카이스트를 떠났다면 이런 것을 못했다. 새로 지은 건물 14개도 없었을 것이고 새로운 학문 분야를 만드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조금 더 했더라면 그런 것이 자리를 더 잡았을텐데 하는 점이다. 동료들하고 생각을 많이 해서 한 건데 나중에 없어진 것이 있다고 한다. 옛날 식으로 돌아간 것도 있다고 하고.”

-2010년 7월 연임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K고를 나온 교수들이 뭉쳐서 연임을 반대했다. 총장을 자기들이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재단이사장, 국무총리 다 같은 K고 출신이었다. 처음에는 연임을 하라고 했다. 안할 걸로 알았던지 하겠다고 하니까 힘을 모아서 자기들이 할 차례라고 나왔다. K고 출신들이 동원을 한 거죠. 재선임을 결정할 때 처음에는 표가 반반으로 갈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과는 재선임 찬성 16표, 반대 2표로 나왔다. 남미를 순방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야단을 쳐서 하룻밤 사이에 9대9가 16대 2로 바뀌었다고 한다.”

-‘서남표식 개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의욕적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개혁을 하겠다는 개혁은 옳지 않다. 카이스트에 여러 문제가 있었으나 가장 큰 건 변화하는 과학기술과 사회, 경제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교수들이 30년간 편한 곳에서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있다보니 더 이상 사회문제를 다룰 수 있는 배경이 약해져 있었다. 21세기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연구한 것 중에 ‘기능 주기’(functional period)에 관한 것이 있다. 사람 세포는 24시간 만에 새 것이 쪼개져 나오고 날(日)은 24시간만에 바뀐다. 많은 자연법칙이 그렇다. 주기적으로 변하는데 새 주기를 시작할 때에는 조건을 봐서 하고 그 다음에 또 그렇게 하고. 세상이 대부분 그렇다. 곡식이 나는 것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전에 한 것과 똑같이 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 맞춰 다시 시작하고 다음 주기를 정하는 거다. 공장을 움직이다가 생각한 것인데 프로그램해서 같은 로봇을 1,2년 운영하면 더 이상 못쓴다. 그사이 조금씩 변하는 것이 축척되다보면 오래 가서 멈추거나 바뀐다. 기계도 하루면 하루, 이틀이면 이틀, 한 주기가 끝난 다음 조건을 보고 다음 주기를 하도록 플랜을 짜야 한다. 대학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오래가는 게 민주주의는 4년, 5년이 지나면 새로 시작하는게 강점이다. 독재는 그게 없으니 재생을 못하는거다.”

-요즘 카이스트의 대학 순위가 계속 오르고 있다.

“공과대만 놓고 보면 카이스트가 세계 20위 안에 든다.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젊은 교수를 350명 쓴 점이다. 취임했을 때 보니까 교수 평균 연령이 55세였다. 10년 내 교수 반이 나간다는건데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고 한꺼번에 충원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350명을 새로 썼고 지금 그게 카이스트의 힘이다. 2009년 미국 경기가 좋지 않았던 게 우리에게 다행이었다. 미국이 사람을 쓰지 않을 때 그 해에만 우리가 60명을 뽑았다. 다른 대학은 교수 1명 나가면 1명 채용하는 식이었으나 우리는 마구 뽑았다. 좋은 사람이 들어오니까 연구비가 늘어나고 연구비 ‘오버헤드’(교수 연구비의 학교 재정 전입액)가 들어와서 예산 문제도 간단히 해결됐다. 오히려 재정이 2.4% 늘었다. 행정하는 사람은 덮어놓고 숫자만 볼게 아니라 목적과 문제를 봐야 한다. 문제에 따라 목적을 정하고 목적을 정하면 그걸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해야 한다. 대학은 다른 것 없이 교수와 학생이 좋으면 된다. 신진대사를 시킨 결과가 대학 순위로 나오는 것 같다.”

-평소 교수의 역사적 소명을 많이 강조했는데.

 

“교수는 역사 발전을 위해 뭘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인류에 도움이 된다. 얼마전 MIT 기계공학과에서 테뉴어(정년보장)를 받은 교수들을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다. 제가 가르친 학생도 들어 있었다. 그들에게 ‘테뉴어를 받은 뜻이 뭐냐’고 물었더니 주춤하더라. 이제 불안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크겠죠. 하지만 난 ‘이제부터 네가 마음껏 일해도 좋다는 뜻이다. 그동안 동료와 선배 교수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를 봐야 했으나 이제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껏 정말 깊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고 말해줬다.

-교수는 역사와 경쟁해야 한다는 말도 자주 했다. 우월감 아닌가.

“목표를 그렇게 두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그렇게 못하는 대학이 많다. 연구해야 한다고 하고 논문도 많이 낸다. 하지만 인류에 얼마나 공헌할지 생각하면 소용이 없는 것들이다. MIT 기계공학과도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과라고 하는데도 학과장으로서 보니까 아니었다. 세상이 바뀌는데 100년전 한 것 가지고 잘 한다고 하고 있었다. 역사와 경쟁한다는 게 물론 어려운 일이고 누구나 성공할 순 없다. 하지만 목적을 거기에 두지 않으면 연구하는 사람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게 된다. 연구를 무엇 때문에 하는가. 논문을 쓰는 게 뭐가 중요한가.”

 

-한국에서 경험한 교수사회는.

“미국에서 대학교수는 직업이다. 가르키고 연구하는 직업이다. 한국에서는 대학교수에게 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인 이상으로 일정의 특권이랄까 특별한 계층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에 칼럼을 제일 많이 쓰는게 교수죠. 특권이 있다 보니 교수 하다가 행정을 안해 본 사람이 장관으로 금방 가고. 잘못됐다기 보다 한국 구조가 그렇다. 단점이 뭐냐면 교수가 시간을 학문 보다 다른 곳에 보내는 게 유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딴 데 시간을 보내고 신문에 글 쓰고 해서 장관도 되는데 줄곧 노력하고 연구비 얻어다가 학생들하고 연구해서 논문 쓰고 하는 게 고달플 수밖에 없다. 교수들이 잘못하면 유혹에 빠지기 쉽죠. 서울지역 교수들은 정부 위원회 들어가서 활동하고. 학교 일보다 밖에 일이 더 많고 밤낮으로 위원회에 가 앉아 있고. 깊은 연구는 미쳐야 한다. 매일 그 것만 생각해야 큰 아이디어가 나온다. 학생에게만 시켜서는 안된다. 교수 역할이 이제 달라져야 한다. 과거 지식을 찾으려면 도서관에 갔지만 지금은 순간적으로 구글로 찾아내는 세상이다. 가르치는 역할이 달라진 거다. 이제 가르치는 사람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물어야지, 어느 지식을 준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교육방법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대학도 완전히 달라져야 하고 교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학생들이 문제를 스스로 찾아내고 스스로 문제가 무엇인지를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시대에 맞춰 대학교육도, 중등교육도, 입시도 바뀌어야 한다.”


- 카이스트 교수사회를 많이 바꾸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제일 쉬운 게 강의하는 거다. 한 3년만 하면 따로 준비할 것도 없다. 50분간 떠들고 나서 오늘 할 것 다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식으로 가르치려면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이제 카이스트에서는 학생이 인터넷으로 먼저 강의를 듣고 수업은 토론으로 한다. 처음에 교수들이 반대를 많이 했는데 학생들이 원하니까 점차 퍼졌다. 성공한 것 중 하나가 그거다. 처음 시작할 때 교수 3명만이 참여에 동의했다. 교수들이 연판장을 돌리고 반대가 심했다. 나중에 1명은 발을 빼더라. 지금은 200여개 강좌가 그런 식으로 수업한다. 학생들이 원해서 성공한 거다. MIT도 그렇게 한다는데 너무 민주적으로 해서 그런지 진도가 느리다.”

-재임중 추진한 테뉴어 심사강화, 교수성과급제, 차등학비제 등이 많이 퇴색했는데.

“3가지 다 어렵게 도입했다. 학교 재정은 한계가 있으나 적합하게 써야한다. 연구비로 받든, 정부에서 받든 국민 돈이다. 가장 적합하게 쓰기 위해 일 잘하는 교수에게 더 줄 수밖에 없다. 학생들한테 학비를 내라고 하는 것도 오해가 많았다. 처음에 보니까 학생이 3000명이어야 하는데 20%가 많았다. 졸업을 안하고 있는 거였다. 기숙사 수용 인원이 넘쳐 2명이 쓰는 방 한개를 3명이 쓰고 있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졸업을 안하다는 거였다. MIT는 수업료 부담탓에 한 학기라도 일찍 졸업하려고 한다. 카이스트는 식사도 제공하고 재워주니까 졸업을 안하는 거다. 대학원도 교수가 박사 과정 학생을 10년간 붙들어 두고 있었다. 4,5년, 6년이면 마쳐야 하는데 교수들이 붙들어 두고 있었다. 국가 장학금이 나오고 교수가 책임지지 않아서다. MIT는 교수가 학생들을 데리고 있으려면 본인이 연구비를 더 받아와야 한다. 그래서 학비를 받겠다고 했다. 전원이 아니라 성적이 나쁘거나 4년만에 졸업하지 않고 남아 있으려면 학비를 내라는 거다. 학비를 낸 학생은 전체의 0.8∼1.2% 뿐이었다. 잔뜩 불만이 있던 사람들이 이런 걸로 문제를 삼았다.”

 

-교수 평가때 학과별 특성을 고려하는 등 속도를 조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재료 분야는 논문을 쓰기 어렵고 수학이나 경영대학은 어렵죠. 경영자 입장에서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나는 카이스트에서 논문 숫자를 세지 않고 질을 따졌다. 숫자로 하다보면 엉터리 같은 논문,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을 쓴다. 물론 분야마다 특별한 게 있지만 하나하나 따져 하기가 참 어렵다. 그건 경영대학장이 할 일이다. 경영대학장이 그 분야를 잘 아니까 거기에 맞춰 추진하면 된다. 중앙에서 예외를 만들게 아니라 각 학과장이 알아서 시행하면 된다.”

-학생들 자살로 많은 고민이 있었을텐데.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변명을 하자면 학비탓에 자살한 아이는 한 명도 없다. 이성이나 교우 관계, 개인 문제로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한 학생은 고교 추천서에 우울증이 있다고 돼 있었는데 카이스트에서 받아들였다. MIT에서도 올해 2,3명이 자살을 했다. 모든 대학에서 보면 공부 준비가 안돼 어려워 하는 학생도 있지만 머리가 나빠서라기 보다 딴데 정신이 팔려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시간을 공부하는데 쓰도록 할 의무가 있다.”

-어떤 학생이 인터넷에 딴짓을 할 여유를 줄 수 없었느냐는 글을 올렸던데.

“학생들이 공부만 하라는 게 아니다. 남녀관계나 사회문제, 정치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학자라고 정치에 흥미가 없으면 어떻게 사회에 기여를 하겠는가. 단지 쓸데없는 것을 하지 말라는 거다. 카이스트 학생이 1만명인데 밤에 가보면 캠퍼스에서 학생이 안보였다. MIT도 학생 숫자가 같은데 캠퍼스에 학생들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 학생들이 캠퍼스에 없다는 건 딴 짓을 하고 있다는 거죠. 도서관에 가보면 텅텅 비었다. 바꾸니까 도서관이 차더라. 공부 때문에 다른 것을 못한다는 건 구실이다. 어찌 사람이 공부만 할 수 있겠는가. 호기심 많은 젊은이들이. 게임에 관심있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 동아리 참여를 장려했다. 카이스트 출신끼리 결혼한 커플이 많은 걸 보면 학생들이 공부만 하느라 연예를 못한건 아니겠죠. 우리 학교에 여학생이 25%밖에 안되다보니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사귈 기회가 없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여자대학으로 버스를 보내는 아이디어도 생각해 봤다.

-정년보장 심사에서 탈락시키기는 것도 힘들었을텐데.

“한 사람의 일생을 정하는 거니 어려운 일이다. 욕을 얻어먹더라도 큰 그림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이야 얘기할 수 있는데 당시 심사에 떨어진 분들을 위해 다른 대학 총장 5명을 만났다. 당사자들 모르게 이런 분야에 좋은 분이 있으니 쓰시면 대학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부탁했다. 4명이 들어줬다. 어떤 사람은 말도 안되는 것으로 공격하던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어떻게 일일이 대응을 하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떤 분은 배경을 다 알면서도 앞에서 하는 얘기와 뒤에서 하는 얘기가 다르더라.”

-영어 강의에 부담스러워하는 교수와 학생이 많았다.

“영의 강의는 학생 보다 교수가 더 부담이 된다. 학교는 학생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학생들 장래를 위해서는 영어를 잘 하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에서 영어를 못하면 세계를 상대로 일할 수 없다. 프랑스도 대학원에서는 영어로 가르킨다. 과학기술은 앞으로 점점 국경이 완전히 없어질테니 영어가 필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새로 킹압둘라과학기술대학(KAUST)도 외국인을 총장으로 모셨다. 영국 캠브리지 전직 총장도, 현재 옥스포드대 총장도 미국에 대학에 있던 사람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대학도 바꾸기 위해 미국서 사람을 데려간 거다. 세계가 바뀌고 있다.”

-총장 시절 정부는 대학에서 손을 뗴라고 하셨는데.

“세계 20대 대학을 보면 주로 미국 대학이다. 미국 대학도 공립대는 미시건대 하나밖에 없다. 유럽에 그렇게 대학이 많은데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한국도 보니까 대학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가 너무 조정을 한다. 정부는 국민 세금을 다루다보니 차별을 둘 수가 없다. 유럽 대학도 정부가 잡고 있어서 경쟁이 없고 일을 잘 하는지, 못하는지 따지지 않고 학생 숫자에 따라 예산을 준다. 세계 경쟁에서 뒤지는 것이다. 정부는 대학에서 손을 떼야 한다. 돈을 주되 간섭을 말아야 한다. 독일에서는 교수가 정부 직원이다. 좋은 대학이 나올 수 없다. 대학이 잘 되려면 경쟁해야 하고 경쟁을 하려면 자기 스스로 목적을 생각하고 방법을 강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사립대까지 정부가 간섭을 한다. 사립대는 망할 건 망하고 잘될건 잘되도록 놔둬야 한다. 정부가 손을 대면 망하는 대학도, 잘되는 대학도 없다.”

 

-대학 구조조정도 시장원리에 맡겨야 하나.

“정부가 할 수가 없죠. 주어진 조건이 다른데 어떻게 관리하겠는가. 전에 교육부를 보면, 밤낮으로 이름이 바뀌던데, 과장급 직원이 쉰몇명이었다. 그 인원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어떻게 다 관리하느냐. 한국에 대학교가 300여개 있는데 쉰몇명이 앉아서 주무른다. 특히 국립대 같은 경우 이사 임명까지 간섭한다. 정부는 카이스트 이사회 같은 데에서 손을 떼야 한다. 제가 노력해서 이사 임명에서 정부가 손떼게 했는데 다시 가져갔다고 한다. 정치적인 사람이, 교육과 관계 없는 사람이 들어와서 집적대기 시작하면 안된다. 미국 주립대학 문제가 그거다. 주정부가 돈도 많이 안 주면서 개입을 한다. 미국 주립대학 총장은 그래서 오래 하지 못한다. 주정부가 그걸 이권으로 생각해서 바꾼다. 경험해 보니 4년동안 대학을 바꾸기가 정말 힘들다.”

-정부와 국회를 발이 닳도록 찾아다닌 걸로 아는데.

“목적은 하나였다. 카이스트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걸리는 게 많았다. 교수를 늘리지 못한다고 하고 특별한 연구를 하겠다는데 과장도, 장관도 못한다고 하더라. 다들 할 수 없다고 하고 자기 영역이 아니라는 거죠. 카이스트가 인류에 공헌하는 연구를 하고 싶은데 그걸 못한다고 그러더라. 동료 교수들하고 생각한 것이 EEWS 연구였다. 에너지(Energy), 환경(Environment),수자원(Water),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관련해 인류 문제를 해결하면 카이스트는 유명한 대학이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명한 대학은 다 인류에 큰 공헌을 했다. 논문 숫자가 아니라 큰 문제를 해결해야 세계적인 대학이 된다. 열심히 정부와 국회를 찾아다닌 이유다. 어렵게 국무총리 도움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국회까지 통과했는데 나중에 정권이 바뀌니 그 예산이 없어져서 다시 살리느라 애먹었다”

 

-개혁 과정에서 소통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데.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말을 들어주면 소통이고 안들어주면 소통이 아니라고 하는 상황이다. 소통도 목적을 정해 놓고 소통이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완전히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이 소통을 할 수가 없다. 한 사람은 이쪽으로, 다른 사람은 저쪽으로 생각하는데 소통이 되겠는가. 소통이 되려면 목적을 하나로 정해야 한다. 이길, 저길 중에서 정하든지, 아니면 새 목적을 만들어야 한다. 말만 해서 소통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목적이 다르니까 한 사람이 그쪽으로 오기 전까지는 소통이 안된다. 말만 하는 게 소통이라면 얼마든지 하겠는데, 소통의 결과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의 소통만 생각하면 해결이 안되죠.”

 

-박근혜 정부도 소통 부재 지적을 받고 있다.

“그 분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소통을 많이 얘기하는데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뜻을 이해한다. 혁신해서 새 산업을 만드는 꿈을 공유하고 이해한다. 그게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혁신은 분야를 정하는 것 보다 아이디어를 찾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세계 시장은 인류가 필요한 걸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한 시기가 온다. 21세기 중요한 게 뭘까 생각해 보면 결론은 환경 문제 해결이다. 꼭 해야 한다.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걸 해결하는 나라가 세계 시장을 잡을 것이다. EEWS가 그래서 중요하다. 누가 해결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가 세계 시장을 잡는다. 에너지와 환경은 어느 나라에게나 기회가 주어져 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어떻게 보는지.

“한국에서 신성장동력기획단 단장을 맡았다. 한국이 무얼로 먹고 살아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걸 했다. 창조적인 새 아이디어를 내는 게 어렵더라. 어떤 이는 미국에서 하는 LED 기술을 가져다가 하자고 하더라. 필립스나 GE가 특허를 가지고 있을텐데 어떻게 하려고 하냐고 하니까 한국은 그걸 싸게 만들어서 비지니스를 하자고 하더라. 대통령이 원하는건 새로운 아이디어인데 그게 안나오더라. 산업계에서 그게 나오기 어렵다. 내년, 내후년 제품을 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미국에서도 대학의 젊은 사람들이 생각을 낸다. 제한 없이 흥미있는 생각을 해서 구글이,애플이 나왔다. 한국의 연구소 같은 데에서 프로젝트 성공율을 물어보면 90%, 70%라고 말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성공시키는 건 몇 %밖에 안된다. 성공율을 몇 % 높이려고 남들이 한 비슷한 문제를 잡아서 한다. 연구는 사회가, 인류가 필요한 걸 해야 한다.”

-한국이 연구개발(R&D) 투자를 크게 늘렸는데 성과가 없다.

“여러 문제가 있다. 연구비 많은 부분이 대학이 아니라 산업계로 간다. 산업계는 당장 풀어야 할 단기 과제에만 돈을 들인다. 장기적인, 국가적인 연구를 해야 하는데 기업은 단기적인 문제만 해결하려다 하니 창의적인 것을 못한다. 정부 연구비를 효과적으로 쓰려면 중요한 문제를 잡는 데에 투자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문제에 중점을 두지 않고 남들이 하는 문제, 외국에서 하는 것을 보고 참고해서 만들어 내려고 하더라. 한국 대학과 연구기관에 필요한 건 인류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노력이다. 온라인전기자동차도 얼마나 비난이 심했던지. 대학 교수들, 정치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안된다는 했다. 새 아이디어로 새로운 걸 하려고 하면 공격이 심하죠. 그런 공격을 안받으려고 정부에 있는 사람은 연구자를 100명 정도 모아서 맡긴다. 거의 모든 대학의 모든 분야 교수가 참여해서 연구하니까 정부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부담이 적은 거죠. 한 명에게 가는 돈은 조금이지만 전체로 보면 큰 돈이다. 정부가 10억원이니, 100억원이니 줬다고 하는 연구를 들여도 보면 다 그런 식으로 나눠먹기다. 욕을 안 먹으려고 하고 그 자리에 오래 있으려고 하니 제일 쉬운게 나눠주기다. 한국이 연구비를 잘 쓰려면 정말 문제를 잘 찾아내야 한다. 좋은 문제를 찾아내면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결과는 나온다.”

보스턴(매사추세츠주)=박희준 특파원 july1st@segye.com


◆ 서남표 前 총장은… ▲경북 경주 출생(1936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학사(1959년), 석사(1961년) ▲카네기멜론대 기계공학박사(1964년)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1965∼1970년) ▲MIT 교수(1970∼2006년) ▲MIT 기계공학과장(1991∼2001년) ▲미 과학재단 공학분야 부총재(1984∼1988년) ▲카이스트(KAIST) 석좌교수(2001∼2006년) ▲KAIST 총장(2006∼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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