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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잊혀질 권리’ 논쟁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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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22 19:44:32 수정 : 2015-06-22 20: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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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신상털기' 차단엔 공감… 법제화엔 갑론을박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내 정보’의 삭제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를 둘러싼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디지털화된 현대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잊혀질 권리란 포털사이트 등 정보통신 제공자에게 자신과 관련된 정보와 게시물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이른다. 온라인을 통해 무수히 많은 정보가 유통되고 정보 확산속도가 빠른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이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대행해 주는 업체와 직업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사생활 침해 등 논란이 되면서 최근 각국에서 잊혀질 권리와 관련된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국내에서도 법제화 움직임이 일면서 이를 둘러싼 찬반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법제화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측에서는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의 ‘알 권리 인정’ 판결… 법제화 움직임 촉발

잊혀질 권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의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하 곤살레스는 자신이 빚 때문에 집을 경매처분했다는 내용의 10여년 전 신문기사가 구글에서 검색되는 것을 확인하고 삭제 요청을 했다. 빚이 해결됐는데도 기사가 계속 검색되는 것은 인권침해란 이유에서였다. 구글이 이를 거부하면서 소송이 시작됐고, 지난해 5월 유럽사법재판소(ECJ)는 “모든 인터넷 이용자들은 잊혀질 권리를 갖고 있다”며 구글에 관련 링크를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잊혀질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첫 판결이었다.

이후 각국에서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방송통신위원회가 법제화를 검토 중이다.

현재 국내에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보통신망법은 권리가 침해당한 이가 정보통신 제공자에게 삭제를 요청하면 자동으로 최대 30일 동안 정보를 차단할 수 있는 ‘임시조치’제도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임시조치는 30일 후 해당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데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은 적용받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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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VS 알 권리

법제화에 찬성하는 이들은 온라인 정보를 더 이상 개인이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가상공간에서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기 때문에 개인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이 담긴 글이나 사진 등이 한번 퍼지면 당사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실제로 대학생 A씨는 자신이 SNS에 올렸던 사진이 제3자에 의해 가공·유포되면서 피해를 봤다. 자신이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합성된 사진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놀림거리가 된 것이다. 그는 22일 “처음 인터넷에서 사진을 발견했던 때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며 “너무 놀라 손까지 덜덜 떨렸다”고 회상했다. 시간이 지나면 놀림도 가라앉을 것으로 여겼으나 고통은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A씨처럼 지우고 싶은 게시물 때문에 고통을 받는 이들은 증가하는 추세다. 방통위에 따르면 명예훼손과 관련한 임시조치 건수는 2008년 9만2000건에서 2013년 37만4000건으로 5년 새 4배 넘게 급증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20만9000건에 달했다.

최근에는 누리꾼의 이른바 ‘신상털기’가 확대되면서 무심코 올렸던 SNS 게시물로 가상공간에서 ‘공공의 적’이 되는 일도 허다하다. 이 때문에 결혼이나 취직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이들도 있고, 성관계 동영상이나 나체사진 등이 돌면서 죽음을 비롯한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도 적잖다. 온라인 정보 삭제를 대행해 주는 업체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심각한 실정이다. 한 변호사는 “현재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 자신이 1차 생성한 게시물 혹은 자신이 인용된 게시물에 대한 처리권한이 피해자에게 없다는 점”이라며 “이런 권리를 법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제화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관련법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당사자가 요구한다고 모든 정보가 지워지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은 물론이고,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정치인 등이 ‘세탁’을 통해 공익을 침해하는 데도 동원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 결과 심각한 정보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위키피디아를 운영하는 위키미디어 재단의 이사 릴라 트레티코프는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ECJ 결정에 대해 “법원은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권리 가운데 하나인 ‘정보를 찾고, 전하고,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등한시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잊혀질 권리가 법제화하더라도 제한적이고 엄격하게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요건을 구체적으로 설정해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파워블로거 B씨는 “지금도 식당 등에 대해 비판을 담은 솔직한 후기를 쓰면 그 식당에서 근거도 없이 일단 게시물부터 내릴 것을 요청하는 일이 많다”며 “잊혀질 권리가 인정되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조작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법학)는 “잊혀질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은 점차 강해지고 있지만 적용 대상과 정보 처리방식, 판단기준 등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삭제권이 너무 광범위하게 인정되면 언론의 자유 등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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