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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군인, 영웅인가 희생자인가

입력 : 2015-06-06 01:56:24 수정 : 2015-06-06 01: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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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사 주역이던 ‘군인’
어떤 존재이며 왜 싸웠나 고찰
전쟁의 야만과 참혹성도 고발
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군인:영웅과 희생자, 괴물들의 세계사/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우리는 모두 시체를 좋아한다.”

책의 4부 26장의 첫 문장이다. 끔찍한 확신의 근거는 무엇일까. 글은 “우리 선조들은 떼 지어 공개 처형장으로 몰려갔고, 독일 시청자들은 매일 저녁 평균 30편의 범죄물에서 30건의 살인을 즐긴다”고 이어진다. 피에 대한 갈구는 인간의 사악한 속성인 셈이다. 26장의 제목은 ‘피의 도취’. 군인들이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를 설명하는 내용 중 하나다.

피에 취한 군인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류의 역사와 심리를 추적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그(아킬레우스)는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두 손을 피로 물들이며 명성을 얻기 위해 광란의 칼춤을 추었다”고 전한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점령 당시 “(우리 측 병사들은) 분노로 가득 차 여자와 노인, 아이들에게까지 무참히 칼을 휘둘렀다”고 고백한다. 목숨에 대한 경의가 부족했던 고대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의 하사관은 기관총의 성능을 찬양하며 이렇게 적었다. “적군이 무기력하게 천천히 쓰러지는 모습에서 받은 첫 충격이 지나고 나자 우리는 이 전술에서 놀라운 힘과 기쁨을 느꼈다.” 저자는 노벨상 수상자인 엘리아스 카네티의 입을 빌려 “전쟁에 나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은 자들에 대한 이런 야릇한 우월감을 맛본다”고 주장한다.

군인들이 죽어간 이유는 ‘피의 도취’ 말고도 많다. 나폴레옹은 “이제 그대들의 머리 위에 앉아 그대들의 실추된 명예를 세워주기 위해 황제가 왔다”고 역설하며 군인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참전한 군인들은 ‘개선장군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착각 혹은 거짓말이 군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2003년 3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무장해제해서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고 세계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으로부터 구하려고 한다는 건 아마 거짓말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험과 종교, 조국, 복수심, 심지어 게으름과 만족도 군인들 죽음의 이유가 되었다. 

1918년 슬픈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한 독일 군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 속 병사가 전쟁에서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백만명의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간 것은 사실이다.
열린책들 제공
책은 군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힌다. 죽어간 이유는 물론 어떤 무기로 싸웠고, 죽음의 공포에 맞서 전장으로 나아가게 한 힘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 군인이 지난 3000년간 인류의 역사에서 영웅이자 희생자였으며 괴물이었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추적 끝에 한때 세계사의 주역이던 군인이 이제는 존재감이 희미해진 상태로 전락했다는 저자 시각이다. 군인의 존재 이유였던 전쟁에서 군인이 필요없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인전투기’다. 목표 지점의 9∼15㎞ 상공에서 웅웅거리가 비디오카메라로 적을 포착해 타격하는 이 무기는 군인 없는 전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실 전쟁의 승패가 군인없이 결정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에 결정적 마침표를 찍는 데 필요했던 군인은 단지 3명이었다. 미국은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항복을 받아냈는데, 원폭 투하에 동원된 군인은 3명이었다.

군인과 그들이 수행한 전쟁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결국 전쟁의 야만과 참혹함이다. 저자는 책 머리에 “전쟁은 순진한 젊은이들에게 인간의 몸 속에 대검을 쑤셔넣는 법을 가르치고, … 우리 속의 개돼지들에게 군침 도는 먹잇감을 던져 준다”고 강조한다. 전쟁에 대규모 병력 동원이 필요없어진 것이 좋은 일이라면서도 “군인이 사라진다고 해서 미래의 전쟁이 없어지거나 덜 끔찍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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