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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담긴 인간과 세계의 역사를 읽다

입력 : 2015-05-15 21:29:00 수정 : 2015-05-15 2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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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무대로 걸어나오는 노동자들… 당당히 욕구의 권리 주장하는 여성…
이진숙 지음/민음사/3만원
시대를 훔친 미술/이진숙 지음/민음사/3만원


어둠을 뚫고 나온 듯한 남자들의 행진이 당당하다. 짜놓은 듯한 대열은 아니지만 질서가 정연하고, 참가자들 모습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가 1901년 그린 ‘제4계급’의 주인공은 공장 노동자들이다. “제4계급,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은…빛의 세계로, 역사의 무대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아기를 품에 안은 젊은 여인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의미 심장하다. “노동자들의 행군이 단순한 시위나 폭동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개진임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것이며 성모(聖母)를 연상시키는 젊은 여인을 통해 “이제 성모는 하강하여 노동자들의 곁에 임하였음”을 주장한다.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는 노동자들의 힘찬 행진을 묘사한 ‘제4계급’을 1901년 완성했다.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그림은 1800년대 중반 이후 노동자들의 권리와 정치적 요구가 신장되어 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노동자와 농민이 그림의 주인공으로 올라선 시절의 그림이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을까. 1848년 혁명(프랑스 2월 혁명을 비롯해 빈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와 전 유럽의 반항운동) 이후 노동자와 농민은 서서히 정치세력화하기 시작했다. 이해 영국에서는 선거권을 요구하는 차티스트운동이 벌어졌다. 1875년 개혁 성향 독일 사회민주당, 1882년 프랑스의 노동당, 1892년 이탈리아의 노동당이 창당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 각국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파리에서 제2인터내셔널을 결성했다. 8시간 노동제 보장, 참정권 확보 등이 이들의 요구였다.

저자는 서문에 “새로운 역사의 주역이 되는 세대는 늘 자신에게 맞는 표현법을 찾아 왔다. 이는 예술사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적었다. ‘제4계급’은 노동자, 농민이 모색한 표현법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그것은 분명 이전 그림과는 달랐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와중에도 화가들은 도시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했던 때가 있었다. 표현을 한다고 해도 직업이 모호한, 무기력한 모습일 뿐이었다. “인간적인 정수를 보여줄 만한 위대한 노동을 아직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 현장을 그리려는 화가가 공장에 가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비규환의 비참한 지옥이었을 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1901년작 ‘유디트1’. 성적 욕구의 권리까지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여성의 변화된 면모가 드러난다.
민음사 제공
그림에 담긴 시대를 찬찬히 뜯어보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 속에서 살아온 인간 자취로서의 예술사…인간 행위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밝혔다. “역사적 사건에 예술을 일대일로 대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하면서도 ‘엄청난 시대’에 담긴 인간적인 가치, 의미에 대한 탐구는 예술의 몫이었다며 독자들을 ‘시대를 훔친’ 수많은 미술 속으로 이끈다.

장레옹 제롬의 ‘로마의 노예시장’에서는 “수동적인 여인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동양에 대한 서구의 욕망”을 읽어낸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소개하면서는 다양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입체주의가 20세기 초반 물리학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1878년 작품인 펠리시앙 롭스의 ‘창부정치’는 악령이 씐 존재로 인식되는 돼지에 이끌리고 있는 벌거벗은 여자를 표현했다. ‘창부정치’는 “무지몽매한 여자가 예술과 세상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화가의 인식을 드러낸다. 산업화와 도시의 성장 등으로 대표되는 당대 전통 가치관 붕괴의 중요한 징후가 여성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공포심과 같은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졌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1901년작 ‘유디트1’에 이르면 여성은 육체적인 성적 욕구의 권리까지도 당당하게 요구한다. 클림트의 시도는 순결하고 순진해야 했던 이전의 여성상과는 배치되기에 비판의 대상이 됐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여성 참정권의 인정과 더불어 여성의 욕망할 권리는 부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미술을 미술로만 보지 않고, 인간과 세계의 역사로 읽어내는 재미가 만만찮은 책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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