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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 안녕하십니까] 절박함에…'열정페이' 강요받는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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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13 20:14:09 수정 : 2015-07-01 21: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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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꿈꾸며 촬영장 무보수 잡일… 쉬는 날은 마트서 ‘알바’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무보수로 일하고 있어요. 쉬는 날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요.” 지난해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최모(28)씨는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 위해 충무로의 영화제작팀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최씨는 의자를 나르거나 커피를 사오는 등 각종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촬영일정에 따라서는 철야작업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최씨가 받는 대가는 촬영 후 먹는 삼겹살과 소주가 전부다. 최씨는 “예술은 배가 고파야 한다는 인식 때문에 돈을 달라고 하면 순수성을 의심받는다”며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쉬는 날 마트에서 재고를 확인하는 일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고등학생을 상대로 과외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에 대한 청년들의 절박함을 악용하는 ‘열정페이’ 논란이 심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무료노동’을 감내하고 있다. 최씨처럼 일의 보수를 ‘열정’으로 대신하면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쉬는 날에도 일해야 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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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 알면서도 감수하는 청년들

대학 졸업 후 ‘공연기획자’가 되기 위해 소형 매니지먼트사에 입사한 김모(27·여)씨는 6개월의 수습기간 동안 월 110만원을 받으며 중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주 6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면서 공연을 앞둔 기간에는 일요일까지 나와 일했다. 휴일수당·초과수당은 김씨의 ‘열정’으로 대체됐다.

김씨는 “입사해서 첫 월급을 받을 때까지 연봉이 얼마인지도 몰랐다”며 “퇴근시간이 오후 7시였지만 지켜지지 않은 때가 더 많다”며 “돈을 왜 이렇게 조금 주냐고 물으면 ‘돈보다는 가족이라는 마인드로 일해라’는 대답이 돌아오더라”고 말했다. 수습기간을 지나 정규직이 됐지만 월급은 40만원 오른 150만원 수준이었다. 김씨는 “이전에 면접을 본 공연기획사에서는 월 보수로 80만원을 말하더라”며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이고 자리도 많지 않아 돈을 뒤로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다수의 취업준비생이 각종 인턴활동 등에서 ‘열정페이’를 강요받지만 ‘경력’이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20·30대 구직자 1204명을 대상으로 ‘인턴 열정페이 현황’을 설문조사한 결과 65.2%가 인턴 기간 보수가 적고 일이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열정페이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인원 중 55.9%는 그 이유로 ‘힘든 일도 다 경험이라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22.5%는 ‘취업난 시대에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경쟁사회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17.4%), ‘내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4.5%)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교육’ 명목으로 저임금 주지만 ‘단순 노동’이 대부분


지난 겨울방학 동안 국내 금융회사 인턴으로 일한 김모(23·여)씨는 “인턴 기간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애초 채용공고에서 ‘금융업 전반에 대한 이해’라고 두루뭉술하게 업무설명이 돼 있었고, 실제 김씨가 두 달 동안 한 일은 회의시간에 참석자에게 나눠줄 서류를 복사하고 우편물을 사원들의 자리에 배분하는 등의 단순노동이 전부였다. 기업들은 “사회 초년생들이라 생산성이 떨어져 저임금을 줄 수밖에 없고 교육의 일환이라고 봐야 한다”고 반론한다.

지난 3월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대외활동 인식과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외활동 경험이 있는 대학생 1005명 중 60.5%가 열정페이 피해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 유형으로는 ‘단순근로’(36.8%)가 가장 높았고 ‘근로대가 미지급’(22.7%), ‘불분명한 공고’(22.7%)가 뒤를 이었다. ‘공고와 다른 활동’(20.1%), ‘공고와 다른 혜택’(13.5%)이라는 대답도 눈에 띄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장사하는 천민자본주의’의 문제를 꼬집는다.

배규한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열정페이는 고용주들의 노동윤리와 사회적 책임에 관한 문제”라며 “상층부의 책임의식이 지금의 ‘천민자본주의’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천박한 자본주의일수록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게 문제”라며 “소소하더라도 끊임없는 캠페인이나 의식운동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수 기자 v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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