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특파원리포트] ‘아베’가 ‘아베씨’가 되기를

관련이슈 특파원 리포트

입력 : 2015-05-10 21:40:19 수정 : 2015-05-10 21:44: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위안부 할머니 절규 외면 2차대전 때 유대인 구출
스기하라 거론은 위선 과거사 사죄 용기 꼭 필요
벚꽃이 흐드러졌던 워싱턴의 4월이 지나갔다. 워싱턴에 근무하는 한국 특파원과 외교관들에게는 말 그대로 잔인한 4월이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7박8일 방미 기간 내내 바짝 긴장했다. 그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외국 정상의 미국 방문이 이토록 관심을 끈 적이 있었을까. 우스갯소리로 우리 대통령 방문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주인공 아베 총리는 끝내 기대를 저버렸다. 일본 총리로서는 역사적인 첫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역사를 외면했다. 미국에 ‘깊은 회개’(deep repentance)의 뜻을 나타내면서 아시아 국가에는 ‘깊은 후회’(deep remorse)를 언급했을 뿐이다. 위안부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백악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관련 질문이 나오자 준비한 원고만 앵무새처럼 읽어 내려갔다.

아베 총리가 방미 기간 중 역사 속에서 되살린 인물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외교관인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다. 아베 총리는 워싱턴 방문 첫날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찾았다. 2차대전 때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을 기리는 박물관이다. 유대인 출신의 리오 멜라메드 시카고상업거래소(CME) 명예회장이 아베 총리와 동행했다. 그는 2차대전 때 바로 스기하라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스기하라는 1940년 리투아니아 일본영사관에서 부영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 나치를 피해 폴란드에서 유대인 난민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는 본국 반대에도 수천명의 유대인들에게 경유 비자를 내줬다. 그 덕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유대인 6000여명이 나치 학살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뒤 1947년 단행된 감원 여파 속에서 23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쳤다.

스기하라가 없었다면 나치에 학살당한 유대인 희생자는 더욱 늘었을 것이다. 리투아니아가 나치에 점령된 1941년 이후 악명 높은 홀로코스트가 자행됐기 때문이다. 스기하라는 당시 여건이 구비되지 않은 유대인에게도 최대한 비자를 발급하려고 했다. 시베리아와 일본을 거쳐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는 행렬 속에는 8살의 리오 명예회장도 들어 있었다.

스기하라는 일본 현대사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인물이다. 1986년 7월31일 일본 요코하마 남쪽 태평양 연안 가마쿠라의 병원에서 그가 숨지기 전까지 일본은 그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이스라엘은 앞서 1985년 일본인으로서 유일하게 그를 ‘의로운 시민’으로 선정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일본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비롯해 세계적인 유대인 단체 대표들이 그의 빈소를 찾았다.

박희준 워싱턴 특파원
아베 총리가 스기하라를 역사에서 불러낸 건 역설적이다. 그는 미 의회 합동연설 첫머리에서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자유세계의 민주 이념을 강조했다. 그가 소개한 기시 총리는 A급 전범이었다. 그는 군국주의 깃발 아래 주변국 국민에게 뼈에 사무치는 아픔을 남긴 전범과 인도주의적 사랑을 펼친 스기하라를 동시에 편리한 대로 불러낸 것이다.

스기하라는 유대인들에게 왜 비자를 내줬을까. “동기가 뭐냐고요? 눈물로써 호소하는 난민들 얼굴을 보고서 누구나 가질 그런 감정이었죠.” 보스턴대 힐렐 르바인 교수가 1996년 발간된 책에서 소개한 답변이다. 부끄러운 과거를 공개하고 20년 넘게 눈물로써 사죄를 요구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를 철저히 외면해 온 아베 총리가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건 위선처럼 느껴진다.

아베 총리는 미 의회연설에서 자신의 성인 아베(Abe)와 에이브러햄 링컨의 애칭 ‘에이브’를 빗댔다. 그동안 그가 보여준 ‘ABE’에는 미국(America), 주변국과 대결(Battle), 3개의 화살로 상징되는 경제(Economy)만 있었을 뿐이다. ‘C’가 없었다. 바로 용기(Courage)다. 역사를 바로 마주할 용기. 그가 역사를 정면으로 인식할 때 ‘아베’(ABE)는 ‘아베씨’(ABEC)가 될 것이다.

박희준 워싱턴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