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찬 전 관세청장은 지난해 33년 3개월 동안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며 퇴임했다. 조세심판원장,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거쳐 차관급인 관세청장을 거친 백 전 청장은 퇴임 후 개인 세무회계사무소를 열었다. 과거 관세청장 출신들이 퇴임 후 민간 기업이나 대형 회계법인 등으로 영입된 점에 비춰 보면 다소 이례적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세무회계사무소에서 만난 백 전 청장의 표정에는 생기가 넘쳤다. 백 전 청장은 “평생 동안 조세 분야에 있었으니 이제 그것을 납세자들에게 보답할 때라고 판단했다”며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관피아 논란도 있었고, 개인 사무실을 차려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내 영역을 확보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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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년 동안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세무회계사무소를 개업한 백운찬 전 관세청장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사무실에서 납세자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
백 전 청장이 공직에 첫발을 들이며 삼은 좌우명은 ‘강한 자에게 강하게, 약한 자에게 약하게’였다. “물론 형평에 맞게,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게 맞지만 법을 몰라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약자를 생각하자는 의미”라고 운을 뗀 백 전 청장은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약자들은 공직에서 찾아서라도 구제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백 전 청장은 2011년 조세심판원장 시절 국세 3000만원 미만의 소액사건을 담당하는 ‘소액심판부’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바 있다. 그는 “대기업이 청구하는 고액 사건은 세무대리인을 통해서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조세심판을 청구해 쉽게 처리되지만 소액심판 청구는 대부분 자료가 미비하고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말쯤 기각되는 일이 잦았다”며 “당시 소액심판부에 가장 우수한 직원들을 배치해 인용률을 높일 수 있었는데, 지금 조세법연구소를 연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백 전 청장은 공직 생활을 하며 금융실명제, 근로장려세제, 현금영수증제도 등을 만드는 데도 직접 참여했다. 그는 “현금영수증 제도 도입 당시 국민 생활에 너무 간섭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현재는 잘 정착해 과세 투명성에 기여하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백 전 청장은 다수 납세자의 권익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세무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납세자를 대리하는 세무사는 사실상 납세자의 심부름꾼이 아니겠느냐”면서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심부름꾼을 넘어 납세자의 협조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법과 세정을 국민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세무사의 역할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백 전 청장은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세제실장, 관세청장 등 고위직에 부임할 때마다 부처에서 만들어 주는 명함 대신 명함을 새로 팠다. 처음 받는 명함에는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새겨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와서 부하 직원을 포함해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잰체하지 않고 소통하고 싶었다”는 백 세무사는 청장 시절에도 휴대전화 메신저로 부하 직원들과 자주 대화했다고 말했다.
백 전 청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납세자 권익 강화에 힘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30여년 동안 공직에서 국민 여론을 수렴했지만 민간의 입장에서 직접 체험하니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새로운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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