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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양심의 고해성사 “나는 나치 친위대였다”

입력 : 2015-05-09 02:17:51 수정 : 2015-05-09 02: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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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쓴 노벨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참회록 2권
귄터 그라스 지음/장희창, 안장혁 옮김/민음사/2만5000원
귄터 그라스 지음/장희창 옮김/민음사/1만3000원
양파 껍질을 벗기며- 귄터 그라스 자서전/귄터 그라스 지음/장희창, 안장혁 옮김/민음사/2만5000원

암실이야기- 귄터 그라스 자전소설/귄터 그라스 지음/장희창 옮김/민음사/1만3000원


‘양철북’(1959)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책 두 권이 출간됐다. 지난 4월 13일 87세로 생을 마감한 그라스는 ‘행동하는 독일의 양심’으로 인정받는 작가이다. 독일의 만행에 대한 반성을 문학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했고 최근에는 네오나치에 적극 반대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라스는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젊은 시절 나치에 충성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절절히 뉘우친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나치의 만행을 못 본 체한 자신의 어린 모습을 가감없이 들춰낸다.

그라스는 17세에 징집돼 나치 친위대에 복무했던 사실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차없이 칼날을 들이댄다. 그는 이런 사실을 느닷없이 밝힌 것이 아니라면서, 어두운 과거를 항상 인정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는 뒤늦은 반성을 변명하는 행위라는 비판을 살 수 있다. 자신도 나약한 인간인지라 수치스러운 과거를 가능한 한 숨기고 싶어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포장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그라스는 2006년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진짜로 미안해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소? 그건 내가 이미 털어놓았던, 40년 동안 숨기고 싶어했던 그런 게 아니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던 것들이오. 전쟁 초기 그들은 내 사촌을 총살했고, 학교에 있는 내 급우와 교사를 데려갔소.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어떤 병사는 총살 집행인으로 뽑히는 것을 거부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소. 나는 그들을 향해 왜 그러느냐고도 묻지 않았고, 그들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소. 그들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수용소로 데려갔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었지요. 그게 바로 내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이자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고통이었소.”

그는 담담하게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끊임없이 자책한다. 마치 매운 양파 껍질을 벗기듯 눈을 비벼 가며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나흘 뒤, 이 자서전을 세상에 냈다.

귄터 그라스는 나치 친위대에서 복무한 사실을 고백한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낱낱이 드러낸다.
연합뉴스
자서전이 출간된 직후 독일 작가단체들은 그라스 제명을 거론했다. 독일인의 긍지로 여겨졌던 위대한 작가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라스는 전쟁 직후 침울한 독일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던 인물이었다. 위선자, 엉터리 노벨상 작가라고 공격하는 평론들이 나왔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나치 복무 행적이나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냥 묻어놓고 위대한 인물로 세상을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두운 기억을 끄집어내 양심을 속였다며 자신의 ‘과거’를 기록으로 남겼다.

“나는 범죄에 가담했다. 세월이 흘러도 작아지지 않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범죄이다. 지금까지도 그 때문에 나는 병을 앓고 있다.”

그라스는 자서전에서 1944∼1945년 2차 세계대전 말기 악행을 일삼았던 나치 친위대 행적들도 들춰내 후세의 사가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자신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양철북 집필 과정도 담담하게 풀어낸다. 양철북에서는 1920∼1950년대 독일의 일그러진 현대사를 난쟁이 오스카 마체라트의 눈으로 묘사했다.

‘암실이야기’는 그라스가 가족에게 못다한 자신을 반성하면서 쓴 자전소설이다. 전쟁으로 점철된 독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가정의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을 그렸다. 유명한 사진사 마리(그라스)는 성인이 된 자신의 여덟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도록 한다. 자녀들의 다양한 시선을 빌려 그라스 자신의 삶과 경험을 서술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소설의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전쟁 전후의 독일 사회를 비판하면서 기성 세대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도서출판 민음사는 1945년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건을 다룬 그라스의 논쟁적인 소설 ‘게걸음으로’도 조만간 출간한다. ‘독일판 타이타닉’이라 불리는 구스틀로프호는 독일 피난민 9000여명을 태우고 항해하던 중 러시아 어뢰 세 발을 맞고 침몰했다. 생존자는 1000명에 불과했고,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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