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소를 찾고 본디를 찾고 나라를 찾으려는 의지 표현

관련이슈 강상헌의 만史설문

입력 : 2015-05-03 20:27:58 수정 : 2015-05-03 20:27:5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강상헌의 만史설문] <59>만해 한용운의 집 ‘심우장’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성북동의 북향(北向)집 심우장, 서울의 명소 중 하나다.
성북구 제공
걱정을 잊는다는 망우리공원, 숲 사이로 난 길 이름은 ‘사색의 길’이다. 길목에 시인이자 승려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만해(萬海) 한용운 선생 무덤이 있다. 동료 독립운동가 오세창, 천연두를 보급한 의학자 겸 국어학자 지석영, 시인 박인환, 아동문학가 방정환, 화가 이중섭, 언론인 문일평, 정치가 조봉암, 가수 차중락 등도 거기서 함께 쉰다. 만해는 일제 때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했고, 스님으로서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써서 불교의 개혁과 현실참여를 주장했다. 선생이 노년에 살던 집인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은 최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서울의 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아담한 이 집은 전후좌우의 풍수(風水) 요소가 특이하다. 남향(南向)을 이상적으로 보는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북향집인 점에도 이야기가 있다. 일제가 우리를 지배한 기구인 조선총독부의 건물 쪽을 바라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니, 선생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집 이름 또한 예사롭지 않다. 선종 불교의 대표적 설화 중 하나인 소 찾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 심우도(尋牛圖)다. 잃은 소를 찾아 길 떠난 아이가 산과 들을 헤매다 소를 만나 집에 돌아오는 여정이다. 끝내 소도 자신도 모두 텅 빈 것, 즉 공(空)임을 알게 된다는 ‘뜻’이 담긴 얘기가 차례로 펼쳐진다. 절집 벽에서 자주 보는 그림이다. 

동자가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간다. 심우도의 한 장면.
송광사 승보전 벽화
소와 함께 가뿐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해피엔딩이 심우도의 결말이 아니다. 소가 스러지더니 시나브로 소몰이 아이도 사라진다. 문득 물 흐르고 꽃피는, 신선 세상인 듯 수류화개(水流花開)의 경지가 펼쳐진다. 그 아찔한 반전(反轉)은 모든 것을 덮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두가 단지 마음이 지어내는 조화일 뿐인가?

‘…님은 갔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 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님의 침묵’ 중에서)

독립운동가였던 스님 시인 만해 한용운.
만해기념관 제공
첫 키스의 추억을 날카롭게 기억한 예민한 시인이었다. 왜놈들 향해 삿대질이라도 날리는 심통의 작명이었으리. 글자야 심상하지만, 글자 속은 심상치 않았을 터. 찾을 심(尋), 소 우(牛), 풀 무성한 집 장(莊)이니 ‘소를 찾는 집’이다. 시의 문법으로 따라 읽자. 메타포, 즉 은유(隱喩)다. ‘님의 침묵’이 그렇듯 세상도 과연 메타포로 보이는가?

‘심상치 않다’는 예사롭다는 뜻인 ‘심상하다’의 반대말이다. 이 말의 뿌리 즉 어근은 심상(尋常)이다. 한자 보기 어려워진 후 한글 철자만으로 대해오던 단어여서 이 어근이 낯설 수 있겠다. 여기서 尋자는 ‘보통, 평소’의 뜻이다. 쓰다, 생각하다 등과 함께 이 단어는 ‘깊다’는 뜻도 있다. 또 깊을 심(深)자와 발음이 같아 왠지 그윽한 느낌을 풍기기도 한다. 심(尋)은 원래 ‘찾는다’는 말이다. 이 뜻이 심우도의 ‘심’이다. 예사롭다, 쓰다, 생각하다 등은 이 원래 말뜻에서 파생된 것이다. 尋자의 디자인에서도 왠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풍긴다.

좌(左)와 우(右)의 합체 아래 마디 촌(寸)이 붙었다. 左右의 工[공]과 口[구]를 뺀 윗부분은 손이다. 손은 하나만 그렸다. 이 모양은 손을 뜻하는 우(又)나 수(手)와 디자인 원리가 같다. 3500년 전 갑골문 시대 사람들의 손 그림인 것이다. 寸자 또한 손 그림 아래 점 하나를 덧붙여 ‘재다, 측정하다’의 뜻을 너끈히 그려냈다. 

찾을 심(尋)자와 그 글자의 바탕인 마디 촌(寸)자의 옛 글자.
민중서림 한한대자전 삽화
눈으로만 보아서는 얼핏 ‘필(feel)’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글자를 열 번만 직접 종이에 써보라. 문자의 새벽, 그 사람들의 표현의 지혜와 의지를 느낄 수 있으리니. 문화의 시발점을 체득하는 계기일 터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쓰는 일’을 오래 잊고 있었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한다’는 좌고우면(左顧右眄)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망설이거나 여럿의 눈치를 보느라 해야 할 바를 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뜻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尋은 왼쪽과 오른쪽 모두를 헤아린다는 뜻을 한 글자에 담았다. 깊은 안개, 부드러우나 암울한 그 차단의 혼돈 속을 양손으로 휘저으며 본디를 찾으려고 되풀이 모색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인 해서체(楷書體)와는 달리 오래 전의 정종문(鼎鐘文) 尋자에는 석 삼(三)의 변형자인 터럭 삼(?)자가 붙어 있었다. 아름답게 장식하거나 거듭한다는 뜻의 기호다. 현란하기까지 한 합체의 묘미였다.

이렇듯 아름답고 쓰임새 풍부한 단어를 그동안 잊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의 심상(尋常)학교는 초등학교였다. 심인(尋人), 심사(尋思) 등의 단어는 특별한 어감으로 일상생활에서도 쓰였다. 이러다가 이런 말 모두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그래서 선각자(先覺者) 만해 선생이 미리 ‘심우장’의 주제를 그 집에 걸어두셨을까?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갑골문 조각에서 읽은, 손에 회초리를 든 모양의 아비 부(父) 글자.
■사족(蛇足)

여(女)자 글자에 점 두 개를 더해 젖을 먹이는 여자인 엄마 모(母)를 만들었다. 그 젖꼭지에 대한 ‘영원한 기억’은 살아 있는 존재들의 영광이자 기쁨이다. 글자에서도, ‘엄마’란 소리에서도 자애로움이 묻어난다. 아비 부(父)는 ‘회초리를 든 남자’다. 매를 들어 자식을 훈육하는 모습을 본다. 또 가족을 지키고자 몽둥이를 든 남자였다. 열매를 따는 데나 사냥에도 몽둥이는 필요했다. 회초리를 든 손이 父 글자다. 갑골문은 더 구체적인 그림이지만, 지금 글자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부모 글자의 어원이다. 그림이 글자가 되고, 동시에 뜻이 되는 원리다. 표의문자(表意文字), 즉 뜻 글자의 바탕이다. 이 지점이 소리글자인 표음문자와의 차이점이다. 한글을 쓰기 전까지 우리말을 적었던 글자와 그 뜻이 우리 생활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모습이다.

한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수많은 글자의 모양과 소리와 뜻을 짓는다. 흔히 한자의 형음의(形音意) 3요소라고 한다. 예전 서당에서 학동들은 그 원리를 배웠다. 문자학(文字學)이다. 어린 사람들의 입문과정이라 하여 소학(小學)이라고도 했다.

실은 그게 그림공부다.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좌우와 깊이를 모르는 일부 얼치기들이, 저도 잘 모르면서, 훈장질에 나서는 바람에 ‘한자는 어렵다’는 인식이 골목골목에 짙어간다. 저 골목대장들을 잘 가르쳐야 할 텐데, 늘 걱정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수지 '하트 여신'
  • 탕웨이 '순백의 여신'
  • 트리플에스 코토네 '예쁨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