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2일 주희정은 통산 9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프로농구에 큰 획을 그었다. 최초의 기록임은 물론이거니와 보통 대학 졸업 후 프로에 데뷔해 군복무까지 마쳐야 하는 현재 여건상 앞으로도 좀처럼 나오기 힘든 대기록이다. 이제 그가 내딛는 발걸음은 프로농구의 역사로 이어진다.
운명을 만든 건 우연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도 키가 크지 않았어요.” 주희정은 28년 전 농구를 시작하게 된 날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증조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던 주희정은 할머니 손에 맡겨지면서 전학을 갔다. 전학 첫날 농구부 코치 선생님이 들어와 “각 줄 맨 뒷자리 남학생들은 4교시 끝나고 체육관으로 오라”고 말했다. 키 큰 학생들을 대상으로 농구부 입단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전학 첫날이라 자리가 없어 맨 뒤에 앉아 있던 주희정도 얼떨결에 불려나갔다.
그때부터 주희정은 오롯이 농구에만 매달렸다. “중학교 때도 하루에 5시간만 자고 운동해 사춘기를 겪을 틈도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 주희정에게도 농구 인생의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것도 두 차례나.
“고등학교 때 집안 사정도 어려웠고 특히 대학 가는 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좋은 학교에 갈 수 없을 것 같고 아무리 노력해도 실력이 늘지 않아 직업전문학교에 가서 자동차 정비를 배우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를 잡아준 것은 하나뿐인 혈육 할머니였다. 하지만 늘 조금만 더 해보라던 할머니가 이때만은 운동을 그만두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께서 코치 선생님과 먼저 통화해서 어떻게든 말려보겠다는 선생님의 약속을 받은 다음에 ‘짜고 친 고스톱’이더라고요. 하하.”
두 번째 위기는 기회로 이어졌다. 고려대 2학년을 마친 주희정은 또다시 농구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 힘들었고 생활고 탓도 있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만 하면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대학을 중퇴하고 부산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고 했다”는 주희정은 결국 원주 나래(현 동부)에 수련 선수로 입단했다. “연습생으로 들어가 형들 뒤치다꺼리 정도만 할 줄 알았는데 지금의 자리까지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는 선망의 대상으로만 바라본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코트를 누비는 게 꿈만 같았다고 전했다. “데뷔 시즌 신인상을 받아야 되는데 우상인 강동희 전 감독님이 옆에 앉아 계셨습니다. 신인상보다도 그 사실이 너무 들뜨고 기분이 좋아 종이를 내밀고 사인을 받았어요. ‘희정아 열심히 해’라는 글귀가 얼마나 좋던지….”
그렇게 시작한 프로 생활이 벌써 18시즌째. 주희정은 무려 12시즌 동안 전 경기에 출장했고 2007∼08시즌부터 2012∼13시즌까지 6시즌 연속 전 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특히 결장 경기가 18시즌을 통틀어 단 12경기밖에 없다는 점은 그의 자기관리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잘 보여준다.
주희정은 체력이 떨어지거나 기량이 모자라다고 스스로 느끼면 계약 기간이 남아도 은퇴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게 후배들을 위해서도 더 나은 모습일 테니까요. 존경은 못 받더라도 후배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선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용인=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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