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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칼럼] ‘갑’질 부추기는 ‘을’의 체제 정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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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15 23:11:56 수정 : 2015-02-23 10: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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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 체제에 저항보다 순응 선택
침묵하지 않는 작은 외침이 변화 불러
어느 사회든 갑과 을의 관계는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관계가 더욱 뚜렷하다. 한 조사에 의하면, 성인 1000명 중 77%는 ‘갑’질이 모든 조직에 만연해 있다고 대답했다. 또 85%의 사람이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을’이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을’들은 불공평한 사회적 지위에 도전하거나 반대하기보다는, 그저 순응하며 살아가는 편이다.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것은 고통스럽다.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동안 사람의 뇌를 촬영해보면 고통을 느낄 때와 같은 뇌의 부분이 활성화된다. 인간은 고통을 느낄 때 어떻게든 이를 피하고자 한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맞서서 상대를 이겨내거나 아니면 상대에게 순응해버리는 방법. 많은 경우 순응을 택하게 된다.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그 체제에 순응해버리는 것이 쉽다는 생각 때문이다. 즉 자신이 속한 사회의 체제가 정당하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바로 인간이 지닌 ‘체제 정당화’ 성향이다. 아무리 불공평하더라도, 현재의 사회적 체제가 가장 안정적이고 적당한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자신의 지위나 삶에 대해 도전하기보다, 주어진 삶을 정당화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에 이루어진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높다고 상상한 집단과 낮다고 의식하게 한 두 집단에서 체제 정당화가 달리 나타났다. 자신이 아무 힘이 없다고 생각한 집단이 사회가 공정하다고 답하고, 여러 불공평한 사례를 정당하다고 평가했다. 즉 더 높은 체제정당화를 보였다. 자신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생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공평한 사회에 대항하도록 만들기보다, 오히려 체제를 합리화하고 자신이 받는 대우를 정당화하게 한다. 뉴욕대학교에서도 비슷한 실험 연구가 있었다. 체제 정당화와 불확실성이 이후 사회적 저항이나 시위와의 관련성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 사회가 정당하다고 생각할수록, 그리고 지산의 삶이 불확실하다고 느낄수록 사회로부터의 불이익이나 불공평함에 대한 저항이 적었다. 반대하고 시위해서 물의를 일으켜 봤자 더 손해라고 생각하고 그저 이 체제를 받아들이고 순응하자는 합리화가 발동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고 느낄 때, 그리고 자신의 삶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순응하게 된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공평한 곳이라고 합리화하며, 체제가 정당하다고 믿으려 한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우리나라의 수많은 ‘을’들은 순응이 저항보다 더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의 삶과 미래의 많은 부분이 ‘갑’에 의존돼 있음을 인정하고 살아간다. 이들은 불공평한 사회에 도전하고 관행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갑의 불합리한 요구에 반박하기보다 도리어 ‘갑’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결국 ‘을’의 이런 체제 정당화 사고는 또다시 수많은 ‘을’을 양산하고 있다.

사실 한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충성과 순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체제의 정당화 습성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닌가 자문해봐야 한다. 갑의 편의로 만들어진 체제의 부조리를 짚어봐야 한다. ‘갑’질은 결국 을에서 비롯된다. 을이 체제 정당화에서 벗어날 때에만 비로소 그 체제의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물론 무조건 반대하고 반박하고 투쟁하라는 것은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불공정함에 그대로 순응하지는 말라는 의미이다. 그것이 그 많은 ‘을’뿐 아니라 그 체제 자체를 정상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가? 침묵하지 말자. 당신의 작은 외침이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그 거대한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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