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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클린 인터넷!] 사이버윤리 실종 ‘나도 잠재적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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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9 19:40:02 수정 : 2015-01-30 13: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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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미검증 정보 무차별 퍼나르기 억울한 피해자 양산
“자고 일어나니 부재중 전화 196건에 문자 300건.”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1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누가 내 번호를 뿌려서 실시간으로 폰 테러를 당하고 있다”는 피해자의 하소연이다. 글쓴이는 “누군가 나를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가해자 남편이라고 번호를 뿌린 것 같다”며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전화가 6통 왔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신상털기 문제는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무분별한 정보 유통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네티즌들은 정보의 진위를 가리지 않은 채 정보를 퍼날라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사건이 아니더라도 속칭 ‘찌라시’를 통해 정보가 유포되면 당사자들이 누구인지는 1시간도 채 안 돼서 공개된다. 하지만 정부는 인터넷상의 정보 유통을 제재할 만한 방안은 물론 제재할 근거나 규정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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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없이 무차별로 유포되는 사이버상 정보

미국 캔자스대학은 지난해 한 인물의 사진과 이름만 제공되면 1시간 이내 그 사람의 연락처, 집주소, 출신학교, 취미 등 기본 정보는 물론 자주 사용하는 은행, 가까운 지인 10여명 등을 알아낼 수 있다고 발표했다. 또 시간이 더 주어지면 지난주 방문한 장소나 가지고 있는 옷가지 등의 세세한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엉터리 정보가 양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이러한 허위 정보를 검증 없이 전달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 인터넷진흥원(KISA)의 지난해 상반기 조사결과 국내 인터넷 이용자 가운데 무려 81.9%가 ‘출처나 근거가 불분명한 내용의 게시물을 업로드한다’고 대답했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미확인 정보)를 게시한다’는 답변도 81.1%나 됐다.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5명 중 4명이 무분별하게 정보를 퍼나르는 것이다.

이런 허위 정보 유통은 실생활에서 개인적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툼을 벌이다 상대방의 신상을 공개한 가해자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신상털기를 처벌한 판결이다. 명문대 재학생 A(28)씨는 2009년 4월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졸업생 B(35)씨의 글에 반말로 댓글을 달았다가 시비가 붙었다. 두 사람은 수개월간 게시판에 서로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 B씨는 급기야 같은 해 8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네 정체를 안다”며 그의 개인신상 정보를 학교 게시판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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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도입 앞당겨야


이 같은 신상털기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법적 처벌을 받는 범죄다.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사람과 제공받은 사람은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형법 제 307조에 따르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유출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해 최대 5년 이상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하지만 법적 처벌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허위정보 공개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는데 뒤늦게 가해자를 처벌한들 피해가 복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유럽연합(EU)에서 논의된 ‘잊혀질 권리’를 국내에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연구용역 공고도 냈지만 아직 출발 단계라는 지적이다. 잊혀질 권리는 인터넷에서 신상정보 등 자신의 정보를 모두 삭제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들은 관망상태이다.

한 포털사이트 관계자는 “(잊혀질 권리는) 포털업계 전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업체들이 따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설정되지 않아 내부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정보통신망법상 개인이나 기관이 인터넷상의 게시물로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보더라도 법원 판결 없이는 삭제가 불가능하다. 포털사이트에서도 삭제 요청이 들어오면 상황에 따라 ‘임시 게재 중단 조치’를 내린다. 하지만 이는 한시적으로 블라인드 처리를 하는 조치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개인이 삭제 요청을 하면 즉시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시민의 ‘알 권리’, 게시자의 ‘표현의 자유’ 등도 보장돼야 한다는 반론에 부딪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해킹이 아닌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잘못된 정보 유통에 대해 현행법상 처벌할 근거는 없다”며 “인터넷 정보를 제한하는 제도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많아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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