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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위주 교육이 ‘말문’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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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1 19:54:17 수정 : 2015-01-22 20: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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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사회] (4) 침묵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
서울 양화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이 지난 16일 영어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저요, 저요!”

지난 16일 서울 양화초등학교 방과후 학교 영어 수업 시간. “몇시에 잡니까”라는 외국인 교사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절반이 넘는 20여명의 학생들이 서로 경쟁하듯 손을 들었다.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지 않자 3학년 마하준(9)군은 “체, 나 안 해”라며 토라졌다. 하지만 이내 다음 질문이 이어지자 마군은 또다시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바로 옆 교실에서도 학생들의 ‘발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교사가 그림 속 사물을 가리키자 12명 학생 전원이 손을 들며 해당 사물의 이름을 영어로 외쳐댔다. 수업이 진행된 40분 내내 웃음과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교사 서영선(34·여)씨는 “학년이 낮을수록 학생들이 수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경기 남양주시의 A고등학교에는 적막감만 감돌았다.

“이 단어의 뜻이 여기서는 어떻게 쓰였을까요?” “…”

선생님의 질문에도 교실에 앉아있는 25명의 학생 모두 눈만 껌뻑일 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결국 교사는 답을 알려주고는 곧바로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그 후로도 교사의 자문자답이 수차례 반복됐다. 수업이 끝날 무렵 “질문 있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쉬는 시간이 되자 두 명의 학생이 교사에게 쭈뼛 다가가 모르는 것을 물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침묵이 학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실에서는 참여 대신 침묵만이 가득했다. 전문가들은 입시를 위한 문제풀이식 교육에서 벗어나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을 통해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조건 수용’…교수와 의견 달라도 포기


한국의 최고 수재들이 모인다는 서울대 강의실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 교수의 지도를 무조건 수용했다.

21일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이 서울대와 미국 미시간대의 수업 풍경을 비교한 결과 서울대 학생들은 교수의 농담까지 받아적을 정도로 필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미시간대 학생들은 교수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변하고 다른 학생들과의 토론을 활발히 펼쳤다. 필기는 미리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강의 노트로 대체했다.

수업 방식의 차이는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울대 학부생 1111명 중 64.2%(713명)의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력보다는 수용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반면 미시간대의 경우, 자신이 수용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은 응답자 821명 중 40.6%(333명)로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특히 서울대 학생들은 입학 후 졸업 때까지 수용적 태도를 유지했지만 미시간대의 경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차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갖추게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서울대에는 교수와 의견 차이가 생겨도 표현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소장이 서울대 최우등 학부생 46명을 인터뷰한 결과 약 89%(41명)의 학생들이 교수와 다른 의견이 있을 경우 자신의 생각을 버린다고 답변했다.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틀리면 안 돼’…입시 위주의 교육이 ‘침묵 사회’ 원인

전문가들은 정해진 답만을 말해야 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학생들의 말문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침묵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동화고 박영규(36) 교사는 “토론식 수업이 갖는 장점을 알고 있지만 대학 입시를 위해서는 교사가 학생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일단 진도부터 나가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정답을 맞혀야 하는 교육이 이뤄지다 보니 자신의 대답이 틀리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학생들이 점점 침묵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신방학중 이윤우(37) 교사도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학생들이 아예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또 “우리나라 교육 과정 특성상 학생들이 문제 풀이식 수업에만 익숙해져 있다”며 “참여형 수업을 하려고 하면 학생들이 오히려 ‘수업이나 하자’고 불만을 갖는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삽화로 묘사한 한국 학생들의 일상.
차윤경 한양대 교수(교육학)는 “우리나라 학교는 학생들이 민주사회의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있다”며 “학생들은 공식을 달달 외워야 하지 창의적인 생각이나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발 중심의 교육을 학습 중심으로 바꾸는 등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성일 고려대 교수(교육학)도 “미국의 경우 정답이 아닌 것을 이야기할 경우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우리나라는 ‘정답 맞히기’만 인정을 받는다”며 “교육을 ‘정답 맞히기’가 아니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이선·최형창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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